신문로

대학생 시국선언의 숨은 의미

2026-06-12 13:00:06 게재

6월 10일 오후 6시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동시에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39년 전 6.10민주항쟁이 타올랐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국선언의 이유가 낯설다. 군부독재도 아니고 계엄령도 아니다. 투표용지가 모자라서다. “그게 시국선언까지 할 일인가.” 솔직히 처음엔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들여다볼수록 사안이 심각해지고 그 의미가 무거워졌다.

전국 대학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성명과 대자보를 집계하는 사이트 ‘한 표의 기록(hanpyo.kr)’에는 11일 현재 200개가 넘는 대학에서 400건에 가까운 성토와 주장이 올라와 있다. 한결같이 참정권 침해 사태를 규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18개 대학 총학생회 시국선언과 맥을 같이하는 단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취업난과 각자도생의 그늘 속에서 총학생회 구성조차 무산될 정도로 학내 공동체와 사회적 목소리가 약화해 있었던 게 대학가의 쓸쓸한 현실이었다. 그런데 참정권 문제를 놓고 단일대오를 형성하며 강력하고 조직적인 행동에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정권 침해에 분노한 대학 낯설지 않다

언론을 비롯한 대부분의 평가는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청년들의 합리적이고 거센 분노”라며 긍정적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청년들의 지적에 “귀하고 존경스럽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낯설면서 놀라운 이들의 분노는 우리 사회가 미래세대를 이해해 나가는 계기이자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청년의 생각과 행동은 언제나 그 국가사회가 도달할 미래가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독특한 역사를 지닌 한국의 학생운동은 지난 세기 우리 공동체의 꿈과 희망, 그리고 뜨거운 열정의 결정체였다.

3.1운동과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 언어’로 저항했고, 4.19혁명과 6.3항쟁,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는 ‘민주의 언어’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자기희생적 투쟁을 불사했다.

전대협과 한총련 시기 ‘변혁의 언어’로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며 절정에 이르렀던 한국 학생운동은 1996년 연세대 사태를 계기로 기울기 시작했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이 캠퍼스를 덮치면서 과거 학생운동이 독점했던 거대담론은 취업과 생존을 고민하는 학생들의 일상적 관심사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청년들은 광장을 떠났고 자신의 ‘언어’를 잊어버렸다. 기성정치는 이를 ‘탈정치화’ ‘보수화’라는 이름으로 재단했다.

6.3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는 이들에게 잊어버리고 있던 자기 언어를 찾아주는 계기가 됐다. 총칼이 국회를 침탈하는 것보다 자신의 권리가 눈앞에서 증발되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공정과 상식,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결함은 이들을 더 분노케 했다.

2030 또는 MZ세대로 부르는 청년세대를 구성하는 대학생들의 조직적 행동이 학생운동의 귀환 또는 새로운 학생운동의 시작으로 보기는 아직 어렵다. 다만 이들의 소통방식과 저항 방식은 선배들의 그것과 확연히 다를 뿐 여전히 국가사회의 미래 가치를 정확히 향하고 있는 지점에서는 서로 통한다.

이들의 활동무대는 광장이나 대자보보다 SNS와 같은 가상공간이다. 이번 참정권 침해 담론을 결집한 대학 전용 익명 인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이 대표적이다. 단 몇시간 만에 수만명의 시국선언 서명을 모아내는 등 그야말로 ‘광속 결집’의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과거처럼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구호를 외치고 대오를 맞추는 상명하복식 구조 대신 대중이 스스로 권력을 분점하고 시위 현장 자체를 철저한 ‘자율적 통제 체제’로 운영한다.

미래세대 언어 ‘민주’에서 ‘공정과 상식’으로

이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완고하고 폐쇄적인 관료주의에 갇혀 있던 선관위의 개혁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연료는 바로 지금 캠퍼스를 달구고 있는 젊은 세대의 분노가 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선관위 개혁을 고리로 개헌까지도 논의할 수 있고, 그것을 기화로 정치권 스스로는 불가능했던 개헌의 빗장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