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규정에 '매출기준' 추가를"

2023-06-02 11:18:52 게재

한국공인노무사회, 국제심포지엄 … 연차유급휴가, 직장 내 괴롭힘, 야간·휴일근로 제한 등은 즉시 적용 가능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노동법 제정 7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공인노무사회와 세계노동전문가협회(WALP)가 주최하고 한국노동법학회가 후원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WALP 초청 국제심포지엄에는 윤동열 대한경영학회 회장을 비롯해 노동관계 법령을 연구하는 교수 연구자 학회원들과 공인노무사회 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1부에서는 노동법 제정 70주년을 맞아 공로를 포상하는 시상식이 열렸다. 노동계와 경영계 등 각 분야에서 노동법 발전에 기여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중소기업중앙회, 장의성 한성대 교수(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이 공로상을 수상했다.
2부 국제심포지엄은 △노동분쟁의 해결 절차에서 노동전문가의 역할 △스마트워킹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논의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적용 입법과제 등 3가지 세션을 주제로 열렸다.
이황구 공인노무사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노동은 생존과 각자가 가진 꿈과 포부를 실현하는 기본권"이라며 "노동법은 대한민국 광복 이후 민법·형법·상법 같은 일반법보다 우선 제정돼 70주년을 맞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노동제도와 노동현안에 대해 세계노동전문가들과 현장중심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 정부의 노동·사회보험 정책을 뒷받침하겠다"면서 "사업주의 노동 및 사회보험 업무를 지원하며 근로자 노동권익과 노동복지를 증진하는 사명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WALP는 노동현안을 공유·연구하는 한국 이탈리아 스페인 루마니아 캐나다 일본 등 6개국 노동전문가들로 구성된 단체로 2019년 6월 출범했다. 의장국은 이탈리아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공인노무사회 주최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다섯번째부터)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이정미 정의당 당대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황구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이은주 정의당 의원. 사진 공인노무사회 제공


5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근기법)을 확대적용할 때 적용범위 규정에 매출기준을 추가하는 입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준희 한국노동법학회 학술이사(광운대 교수)는 국제심포지엄 세번째 세션 '5인 미만 사업장 근기법 확대적용 입법과제' 발제에서 이같이 말했다.

현행 근기법은 제11조(적용범위) 규정에 따라 상시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된다.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정근로시간(제50조) △가산임금(제56조) △연차유급휴가(제60조) △부당해고 제한(제23조)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근기법이 적용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범위를 정할 때 업종, 매출,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있다. 또한 이들 기준을 조합해 적용하는 복합적인 방법도 있을 수 있다.

◆1953년 법 제정 때부터 근로자 수로 제한 = 우리나라 근기법은 1953년 5월 10일 제정 시부터 적용 범위를 근로자 숫자를 중심으로 제한하는 입법태도를 취했다. 1954년 시행령으로 '15인 이하 사업장'에 근기법 적용을 배제했다. 이러한 근기법 적용범위 예외를 시행령으로 위임하는 태도는 1989년까지 유지됐다.

한국공인노무사회(회장 이황구)는 5월 26일 서울 강남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노동법 제정 7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사진 공인노무사회 제공


1989년 개정 근기법에서 현행법과 같이 상시 5인 이상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전면 적용한다는 규정을 두고,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시행령으로 근기법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시행령 입법은 9년 뒤인 1998년에야 이뤄졌다.

개별 근로관계의 적용 범위와 관련해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적용방식을 취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도 1947년 구 공장법을 폐지하면서 근로자 숫자를 기초로 적용범위를 결정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독일의 해고제한법은 사업장 규모 기준(5인→10인→5인→10인 사업장)에서 변화가 있었다.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은 '기업 적용'의 기준으로 사용자가 근로자를 2인 이상 고용하고 있을 것과 연간 거래총액이 50만달러 이상일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학술이사는 "이는 '영세사업자에 대한 보호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2가지 입법·정책적 목표에서 나온 산물"이라며 "우리나라처럼 근로자 수만을 기준으로 근기법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입법 사례는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근기법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정작 더욱 보호가 필요한 영세 중소기업의 근로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상시 근로자 수 5인 미만인 사업장에 대한 근기법 적용을 제외한 규정이 평등권, 근로조건 보호, 재판절차에서의 진술권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다툰 사건(헌재 1999. 9. 16. 선고 98헌마310 결정)에서 '합헌'이라고 인정했다.

헌재는 그 근거로 △소규모 사업장의 영세성에 따른 법 준수 능력 한계 △국가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 △근기법의 법규범성의 관철을 위한 입법·정책적 고려 3가지를 제시했다.

◆사업장 영세함, 근로자 보호 필요성 비교를 = 근기법 적용범위 확대를 놓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동계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기법 적용 제한을 '차별'로 인식한다. 노조 조직률이 매우 낮은 영세기업의 상황을 고려하면 근기법의 적용을 제한하는 것은 영세기업 근로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헌법상 생존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즉각적인 적용범위 확대를 주장한다.

경영계는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영상 어려움 △일자리 축소 등 고용기피 현상 악화 가능성 △영세사업장 사용자 대다수를 범법자로 낙인찍는 역효과 발생 등을 이유로 적용범위 확대에 반대한다.

정부는 근기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고용실태 경영여건 감독행정력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기법 적용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기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것만 9개에 달한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내 임금불평등 심화와 저임금계층 확대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며서 최근 '최저임금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등이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적용됐다.

이 학술이사는 "법 적용의 형평성 관점에서도 근기법만 법 적용의 어려움이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5인 미만 근로자 사업장에 확대적용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충격과 부작용을 고려하면서 근기법 각 조항별로 사업장의 영세함과 근로자 보호 필요성을 비교해 적용가능한 조항 또는 적용제외 규정을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 학술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기법 적용을 제외하는 이유가 대상 기업의 영세성으로 인한 지불능력 부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시 근로자 규모는 적어도 매출이 일정액 이상인 기업에 근기법의 각종 규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정 규모 이상 매출을 실현하는 중소기업은 5명 이상 사업장으로 간주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근기법의 △연차유급휴가(제60조) △직장 내 괴롭힘(제76조의 2·3) △야간·휴일근로 제한(제70조 제1항) 등은 사용자의 부담은 크지 않은 반면, 근로자의 기본권 보호 효과는 큰 규정으로 즉시 확대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먼저 현행 근기법 제반 규정 중 '모든 업종'에 전면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규정이 무엇인지를 선별해야 한다"면서 "적용을 제외할 필요가 있는 구체적인 업종과 사업장 규모 등을 사회적 담론을 통해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헌 공인노무사회 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근기법을 확대적용할 때 5명 미만 사업장을 수요기업으로, 공인노무사를 공급기업으로 해 △인사노무 컨설팅 △근태관리 시스템 활용 △재택근무 인프라 등의 서비스를 사업주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하는 바우처 지원사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노동분쟁 해결절차에 노무사 역할 강화해야"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한남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