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대법원 판결, 노란봉투법 법적 근거"

2023-06-20 11:58:19 게재

고용부 "노란봉투법과 무관한 판결" … 대법원 정·재계 비판에 "재판절차에 대한 국민신뢰 훼손"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지위와 역할,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노동계가 '노란봉투법' 개정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계 "손배·가압류, 악마의 무기 … 노란봉투법 용두사미 안돼" | 최근 대법원 판결의 사건 당사자를 포함한 노동계 인사들은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김정욱 법규실장 '지게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국회에서 논의하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이어서 법 개정에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대표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은 국회가 그동안 노란봉투법에 대한 직무유기를 해온 데 대해 직무를 독촉하는 재촉성 판결"이라며 "대통령이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권력 분립 원칙에 반하는 행위에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 교수는 "국회는 대법원 판결을 디딤돌 삼아서 계류 중인 노조법 개정안을 제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며 "대통령은 더 이상 거부권 행사를 운운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노조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파기환송했다.

이어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 주도로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본회의로 직회부된 노란봉투법 쟁점 조항의 입법 목적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

노란봉투법에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노동자 개인이 노조활동 탓에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에 시달리는 것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금속노조 법률원 장석우 변호사는 "대법원은 사측이 조합원 전원에게 부진정연대책임을 묻는 데 제동을 걸었다"며 "제동 근거는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념"이라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이 논리는 현재 국회에 계류된 노란봉투법 중 법원이 각 손해의 배상 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과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당일과 18일 두차례에 걸쳐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대법원 판결이 '노란봉투법과 무관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용부는 "이번에 나온 판결은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자는 여전히 공동으로 연대 책임을 지고, 공동불법행위자의 손해배상액을 경감해주는 책임 제한 비율, 즉 공동불법행위자(가해자)와 사용자(피해자) 사이의 불법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액에 대한 분담 비율을 공동불법행위자 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해당 판결은 부진정연대책임의 예외를 규정한 노조법 개정안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대해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입장문에서 "고용부의 주장과 달리 이번 대법원 판결은 오히려 기존 부진정연대책임의 법리를 극복한 것"이라며 "부진정연대책임이란 불법행위가 성립되면 개별 조합원들이 손해액 전부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번 판결에서는 불법행위가 성립하더라도 개별 조합원의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고려해 손해액을 달리 정하라는 취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원은 판결을 둘러싸고 정·재계 비판이 이어지자 이례적으로 입장을 냈다.

대법원은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재판 과정에서 제기됐던 법적 쟁점들과 판결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심중한 검토가 전제되지 않은 채 판결의 진의와 취지가 오해될 수 있도록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재판부를 구성하는 특정 법관에 대해 과도한 인신 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런 주장은 사법권 독립이나 재판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6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대법원은 민법의 기본원칙을 부정하고 우리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판결"이라면서 "종국에는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사실상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나라 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노사관계를 파탄내는 판결이 속출하면서 이 나라의 기업과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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