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갈 준비가 됐나
프랑스가 이민자들의 시위로 불안하다. 알제리계 이민자 소년 나엘이 지난 6월 27일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단이다. 나엘은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파리 외곽의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다. 시민들은 파리의 부유한 지역 백인 남성이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면 총을 쐈겠느냐며 인종차별에 분노한다. 이 폭력시위가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시민혁명으로 세워진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의 데자뷰다. 오늘의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시민혁명의 기치를 민주주의 핵심가치로 세웠다. 시민혁명 이념의 기초는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드니 디드로를 포함한 계몽주의자들이 만들었다. 특히 루소의 사회계약설과 시민주권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시민주권론으로 왕정을 떠받치고 있던 왕권신수설을 혁파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는 1789년 삼부회 사건으로 촉발된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을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부패한 왕정 체제와 기득권의 철옹성인 귀족사회, 앙시앵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 영향은 주변 국가들에게 확산돼 19세기 세계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1830년 '7월 혁명',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1832년의 '6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이 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일어났던 레지스탕스 활동과 1968년 68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는 이같은 시민혁명의 전통과 역사의 토대 위에서 열린 민주주의 국가로 섰다. 프랑스가 유럽 최대의 다문화 시민사회로 진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현재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놓고 노동조합 시민단체들과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라엘 피격 사건이 기름을 부었다. 시위는 파리 리옹 마르세유 툴루즈 등 프랑스 주요 도시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 민주주의 정체성의 위기이자 포용력의 시험대다. 그 핵심은 바로 다문화사회에 대한 수용성의 문제다.
프랑스 시위 반면교사 삼아 미리 준비를
여기서 돌아볼 것은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갈 준비가 되었나 하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수는 약 140만명으로 파악된다.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을 포함하면 200만명 수준으로 추산한다. 국민의 2.8%에 해당한다. 이미 다문화사회에 진입해 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사회 분위기는 아직 '다문화사회 한국'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논의도 정책도 취약하다.
프랑스의 원자물리학자 베르트랑 조르당의 저서 '0.1 퍼센트의 차이'가 시사점을 준다. 그는 "인간의 DNA 유전자는 99.9% 동일하며 나머지 0.1%만이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 0.1%의 차이가 75억명 세계 인구를 제각각 다르게 했다. 조르당은 "개인에 따라 염기서열 0.1%의 차이, 염기수로 따지면 약 300만개에 달하는 단일유전자변이(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SNP)가 인류의 다양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바로 그 0.1%, 즉 염기수 300만개가 갖는 차이다. 유전자 99.9%가 똑같은 동등한 개체로 이루어진 '인류'라는 점에 대한 성찰이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19∼74세 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지수(KMCI)'를 조사했다. 100점 만점에 평균 51.17점이다. 그 의미는 다문화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식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사회 곳곳에 반(反)다문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진행되는 조선족 추방이나 투표권 박탈 서명운동이 그 예다. 이런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은 다문화에 대한 거부다.
국민의 수용성 51.17점도 제한적 수용이다. 제한적 수용이란 "외국인의 존재가 사회구성이나 생활환경에 있어 위협이 되지 않고, 통제가 가능하면 다문화사회를 지지한다. 하지만 외국인 관련 범죄 사회문제 등이 발생하면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는 다문화가 한국의 고유한 가치관 및 문화 수용능력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DNA 0.1% 차이 극복 어렵지 않아
타문화, 또는 다른 민족에 대한 수용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이다. 우리는 아직 학습되지 않았다. 이 과정없이 온정주의나 포용만으로는 건강한 다문화사회를 만들 수 없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차별없는 제도, 저출산시대 국가 생존의 관점에서 계획되어야 한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과 같은 갈등과 분열이 남의 일이 아니다. '다문화사회 대한민국'은 피할 수 없이 온다.
성공적인 다문화사회로 가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세계 속의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약 800만명이다. 그들을 보듯이 한국 속의 200만명의 다문화인을 포용하면 된다. DNA 0.1%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준비와 노력이 없이는 엄청난 위험이 될 수도 있다. 파리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