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시행유보 입법 사태의 교훈

2024-02-08 00:00:00 게재

‘중대재해법’시행을 유보하려던 정부·여당의 계획이 결국 불발됐다. 3년 유예기간이 지나 이제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형사처벌 된다. 노동자의 생명이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어려워진다는 목소리도 컸다. 중소기업을 비롯한 경제계는 2월 임시국회에서 법 시행의 유보를 계속 요구한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그치지 않으면서 노사대립으로까지 치닫지 않을지 우려된다.

대의명분 앞세운 성급한 입법이 불러온 후유증

지난해 11월에는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는 ‘자원재활용법’시행과 관련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환경보호를 위해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해야겠지만,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이런 규제는 영업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문제였다. 정부가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에 대해 과태료 등으로 규제하는 대신에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감축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사실상 일부 일회용품을 대상으로 법 시행을 다시 무기한 유보했다.

올 1월 초 국회를 통과한 식용 목적의 개 사육·도살·유통을 금지한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은 법 시행이 3년 유보돼 2027년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개고기 먹는 것을 금지하자는 움직임이 구체화됐지만 한편으로 오랜 식습관과 문화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고, 이를 생업으로 하던 사업자에게 생계수단이 막히는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시행이 유보된 3년간 어떤 논란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다.

이상 살펴본 3개 법률은 공통으로 국회에서 대의명분을 내세워 입법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경우도 많았고, 법 준수에 대비하도록 한다며 일정 기간 시행을 유보해 여러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입법내용을 이행하려면 개별 수범자나 정부에게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런 비용의 규모나 부담 방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입법해 시행 시기를 통상 6개월 이내의 기간보다 더 늦추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행이 유보된 법률은 유보기간에 입법 반대론자를 중심으로 많은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대재해에 대비하기보다 법 시행을 연기하자고 계속 주장하거나, 일회용품 없이 영업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입법에 충실히 대비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입거나 예측하지 못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입법내용이 변경되거나 유보기간이 연장돼 다른 손해나 피해를 보기도 한다. 예컨대 법 시행에 대비해 재해예방 대책을 마련한 경우, 다회용품 용기를 마련했거나 혹은 일회용품 대체 사업이나 다회용품 세척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손해를 보는 사례가 생긴다.

입법에 따른 비용규모와 부담 따져보고 충실한 이행대책 마련해야

시행을 유보하는 법률은 신중히 제정돼야 하고 일단 제정되면 정부나 수범자가 사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먼저 국회는 대의명분만을 앞세워 졸속으로 입법하지 말고 법 시행에 들어가는 비용의 규모와 그 비용을 누가 얼마를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생각하며 신중히 입법해야 한다. 정부는 유보기간 동안 입법 내용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기간별 이행 대책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특히 입법에 반대했거나 입법내용을 준수하는 데 비용이 들어가는 수범자들에게 적절한 지원이나 보조를 해야 한다. 수범자들은 입법내용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하고 부족하면 정부의 지원이나 보조를 요구해야 한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으며 유보된 법률의 시행을 다시 연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

‘중대재해법’과 ‘자원재활용법’에서 정부나 수범자들이 입법에 대응한 방식은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앞으로 ‘개 식용 종식 특별법’에서는 부적절한 대응이 다시 발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정 기간 시행이 유보되는 법률은 입법에 신중하고 유보기간 동안 충실한 이행 대책을 마련해 대비해야 한다.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 전 공정위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