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의대정원 확대와 건강격차

2024-02-14 00:00:00 게재

최근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조치로 의료계는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의료대란이 우려된다. 의대정원 확대는 국민 보건의료서비스의 접근성 확대를 위한 조치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격차 중 삶의 질과 관련이 있는 건강격차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 의사수를 늘려 국민의 건강증진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최근 건강격차 확대 추이를 고려할 때 의료서비스가 어떻게 제공 분포되어 있느냐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건강격차 또는 건강불평등은 사회집단들 사이에 나타나는 건강상태의 차이 를 나타내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건강격차는 단지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이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계층에 따라 차등적인 건강상태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건강격차,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에서 발생

정부는 국민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다양한 지표 중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뺀 기간으로 정의한 '건강수명'을 2018년 70.4세에서 2030년 73.3세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그런데 2020년 현재 건강수명이 70.9세까지 상승하는 등 성과가 나타났으나 또 다른 중요한 지표인 '건강수명 격차'는 오히려 더 커졌다. 기초생활수급자를 포함한 의료급여 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의 건강검진 수검률이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현저히 낮으며 소득에 따른 건강검진 수검률 격차는 건강보험 가입자 안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암 검진은 더 적게 받고 더 많이 사망하며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 일반검진 수검률의 격차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 관련 건강형평성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16%가 심각한 장애를 경험하는데 이들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최대 20년까지 일찍 사망한다. 만약 불평등한 분포의 아래쪽에서 태어나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박탈되고 그 결과 건강이 나빠져 수명도 낮아지며 이 효과는 경제사회계층에 따라 차등화된 양상을 보인다.

건강관리 비용 격차 확대도 주목할 만하다. 의료비 지출 비중을 소득계층별로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저소득 취약계층의 부담이 고소득 계층에 비해서 클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계층의 건강이 상대적으로 나쁘기에 그만큼 의료비용 지출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이 상대적으로 건강보험 등 공적 제도나 민영 보험시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계층이라면 이들의 사부담이 커져 경제 충격에 취약하게 하고 다시 건강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작용한다.

건강격차의 발생이 게으름 부주의 무책임 등 개인적인 요인에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격차는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에서 발생하며 그 원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건강격차의 확대는 우리 사회의 소득 자산 교육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건강격차의 많은 부분은 줄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좋은 사회란 건강과 건강 형평성의 수준이 높으며 계속 향상되고 있는 사회일 것이다.

의료 인력 증대뿐 아니라 서비스격차 해소 노력도 병행돼야

전반적인 의료 보건 서비스의 공급은 의료전문 인력의 확대와 같은 정책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개선 노력이 없는 한 삶의 질에 중요한 요소인 건강의 격차는 확대될 수 있다. 영유아기의 적절한 발달을 지원하고, 부담할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며, 양호한 고용 및 노동여건이 조성되고, 노년의 생활여건이 보장될 수 있는 국가에서 그 국민의 건강상태가 좋고 건강격차 규모도 작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의료인력 증대뿐 아니라 서비스 격차 해소에 대한 관심과 정책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