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글로벌 디커플링 시대

2024-02-15 13:00:02 게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하는 등 최근 미 증시는 연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올 3월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기준금리 인하시기가 사실상 하반기 이후로 늦추어졌음에도 인공지능(AI) 기술 투자에 적극적인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이 시장을 견인한 덕분이다.

2022년 연간 GDP성장률이 1.9%에 머물렀던 미국경제는 지난해 4분기 3.3%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3년 연간 성장률을 2.5%로 끌어올렸다. 올해 미국경제는 물가 안정세가 점차 가시화되면서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연 2%이내의 적정 인플레이션 수준은 유지하겠다’는 미 연준(Fed)의 숙원을 충분히 이룰 것으로 보인다. 11월에 있을 미 대선 결과가 또 다른 변수이기는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공약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정치적 이슈로 인해 미국경제가 다시금 혼란에 빠질 일은 없어 보인다.

질주하는 미국경제 둔화하는 세계경제

그에 비해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 대부분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낼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한 세계은행은 세계경제성장률이 3년 연속 둔화하면서 세계경제가 ‘최근 30년 중 가장 더딘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연간 GDP 성장률이 8%에 육박했던 중국경제는 2023년 5%대 성장을 마지막으로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4%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동안 중국정부는 수출 부진 속에서도 경제성장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내수시장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부동산 개발을 추진해왔지만, 결국 이 같은 과잉투자가 빚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지금은 내수진작도 고용창출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급준비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지만 이미 세계 공급망 시장에서 입지를 잃어 제조와 수출 모두 어려워진 중국경제가 되살아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경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러시아로부터 값싼 에너지와 자원을 들여와 중국을 최대 수출국 삼아 경제성장을 거듭해 오던 유럽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경제 부진의 직격탄을 정통으로 맞았다. 수출입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역내 물가는 치솟고, 유로존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을 통해 유로존의 경제를 이끌어 오던 독일경제마저 지난해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굴욕을 맛보았다. 올해도 유럽경제는 연 1% 미만의 경제성장률에 만족하며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이어가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고스란히 아프리카 중동 남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가로 확산되어 그들에게는 직접적인 생존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 130%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던 아르헨티나는 OECD 보고서 추산 올해는 무려 250%의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의 경우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생산 부진까지 겹치면서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증할 전망이다.

G2 이후 새로운 경제 질서의 출발점

1970년대 오일피크 이후 가장 높은 금리인상 폭, 지경학적 분절로 공급망 가동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그 밖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지전과 기후변화의 여파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2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화가 붕괴하면서 각 국가가 가진 에너지, 원자재, 식량수급 역량에 따라 운송 에너지 금융 제조 농업의 지도가 바뀌고 승자와 패자가 다시 나뉘게 될 것이라던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의 말처럼 미국과 미국 이외 국가들 간 경제 디커플링 시대의 도래는 미국과 중국이 자웅을 다투던 G2 시대 이후 새로운 경제질서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