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과 첨단학과

2025 첨단학과 지원 전략…의대 증원 영향 받을까

2024-04-03 13:00:02 게재

상위권 첨단학과 추가 합격 가능 … 업종 특성·적성 고려해야

지난해 반도체·인공지능·로봇 등 첨단 분야의 대학 입학 정원이 크게 늘었다. 정부가 첨단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관련 학과의 입학 정원을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대학들도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2025학년 대입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무전공 선발 확대 등의 이슈가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로 자연 계열 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첨단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들려온다. 과연 그럴까? 2025학년 대입에서 첨단학과 지원 시 유의해야 할 사항, 지원 전략 등을 살펴봤다.

첨단학과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는 지난해 첨단 인재양성 계획의 하나로 반도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통신 에너지 신소재 미래차·로봇·스마트 선박 바이오 등 6개 분야 학과에서 1829명의 모집 인원을 늘렸다.

학생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수학 컴퓨터 IT 분야에 관심이 많던 고교생들이 핫한 첨단 산업 관련 학과로 눈길을 돌리면서 첨단학과가 학생들의 선호학과로 부상했다.

◆경쟁률·충원율 높은 첨단학과 = 2024학년 정시 경쟁률을 보면 고려대 데이터과학과 9.54:1,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8.2:1,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다군) 48.61:1, 성균관대 에너지학과(다군) 52.45:1, 연세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 7.29:1,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7.52:1,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11.4:1 등 첨단 산업 관련 학과들이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경쟁률과 더불어 충원율 역시 상승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학년 정시 모집에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220%의 충원율을 기록했다. 전년(160%)보다 많이 올랐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충원율 100%로 전년(72.7%)보다 상승했으며,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도 140%로 전년(50%)보다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2025학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따라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며 첨단학과 유입 증대를 위해서는 안정성과 혜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올해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첨단학과는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며 “결국 자연계열 상위권 학생들은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순으로 진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의대 증원의 영향은 최상위권 첨단학과에 국한될 전망이다. 중위권과 하위권 대학 첨단학과의 경우 점수 차이가 커서 의대 증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하위권 학생들과 첨단 분야에 적성이 있는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첨단학과는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첨단학과의 ‘취업 보장’ 계약학과 눈길 = 첨단학과의 장점 중 하나는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되는 ‘계약학과’가 다수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SK하이닉스와 계약을 체결해 학생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 등은 삼성전자와 연계돼 있어 졸업 후 삼성전자 취업의 문이 열려 있다.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 관계자는 “재학중 삼성전자 입사 전형을 치르고 입사가 보장되는 학과로 삼성전자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매력적인 조건”이라며 “졸업 후엔 삼성전자 DX부문에서 다루는 모바일 생활가전 로봇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상위권 대학이 아닌 경우에는 취업 보장의 혜택이 매우 크다. 지난해 신설된 가천대 클라우드공학과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취업보장 계약 맺은 학과로 가천대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취업 보장은 큰 혜택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지난해 해당 학과 수시 모집 논술전형의 경쟁률은 135:1이었다. 가천대의 논술전형 평균 경쟁률 35.66:1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하지만 취업보장에는 일정한 조건이 따른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학부 과정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학점을 유지해야 하는 등 제한 사항이 있으므로 지원 전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첨단학과의 또 다른 특징은 커리큘럼이 기존 공대와 다르다는 점이다. 첨단산업 분야를 특화해 관련 교과목으로 구성돼 있어 일반 공학 교육과는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따라서 해당 학과에 관심이 있다면 학과 홈페이지를 통해 커리큘럼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전자전기공학과나 컴퓨터공학과에도 인공지능 관련 과목이 개설돼 있지만 전체 커리큘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며 “반면 AI학과는 커리큘럼의 절반가량이 인공지능설계, 데이터 처리와 분석, 인공신경망, 빅데이터, 강화학습, 패턴인식, 임베디드AI, 자연어처리, 로보틱스 등 AI 특화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첨단학과는 학제 과정도 다르다.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는 학사 3.5년, 석사 1.5년으로 총 5년 과정을 통해 학사와 석사 학위를 모두 취득할 수 있다. 중앙대 AI학과 또한 학사 3.5년, 석사 1.5년으로 5년 만에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석사 연계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연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교무부학부장 교수는 “기존 학부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기 위한 정교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접목하기는 어렵다”면서 “서울대 첨단융합학부는 다양한 교육시스템을 최적화해 접목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금 지원과 비교과 프로그램의 혜택이 많다는 점 또한 장점이다. 대부분의 첨단학과는 등록금 및 학업 보조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계약된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와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학비 전액과 매달 학비 보조금을 제공한다. 또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과 해외 사업장 견학 등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경우 삼성전자와의 협약을 통해 합격 시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준다.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 또한 모든 입학생이 삼성전자로부터 1~3학년(6학기) 등록금을 지원받는다. 다만 장학금 지원에는 제한 사항이 있다.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 1학년 김태린씨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학점 평균 3.0 이상을 유지하고 F학점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학과 학생들은 장학금 혜택뿐만 아니라 진로 멘토링, 인턴십 프로그램 등 진로 개척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비교과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실무능력 향상과 진로설계에 큰 도움을 준다.

◆2년 치 입시 결과 비교는 필수 = 성균관대 입학처 관계자는 “소프트웨어·인공지능기술은 일종의 종합예술적 성격을 갖는다”며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는 다양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학과로 특정 과목이나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관심 분야에서 자주적으로 탐구한 경험이 있다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입시에서 첨단학과를 고려하고 있다면 상향 지원도 노려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 소장은 “2025학년 의대 증원의 영향권에 있는 상위권 첨단학과를 고려한다면 의대 증원으로 인한 여파로 추가 합격을 노려볼 수 있다”며 “수시 원서 6장 중 1~2개, 정시에서는 1번 정도의 기회에 도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첨단학과의 경우 지난해에 신설된 곳이 많기 때문에 입시 결과 판단에 주의가 필요하다.

김용진 경기 동대부영석고 교사는 “1차년도 입시 결과는 허수가 많아 과도하게 높거나 낮을 수 있으며 입시 결과가 크게 변동될 수 있다”며 “중상위권 모집 단위들과 비교했을 때 첨단학과 입시 결과가 너무 높은지 혹은 너무 낮은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지나치게 높은 결과라면 올해는 무조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또한 첨단학과 지원을 고려할 때는 현재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업종 특성과 산업 사이클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대 지원자들은 대부분 졸업까지 최소 6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재가 아닌 7~8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며 지원하는 게 좋다.

김 교사는 “산업 업종별로 호황과 불황의 주기를 살펴봐야 하며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단순히 현재의 경기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산업의 특성과 더불어 자신의 적성도 고려해 지원해야 한다. 첨단학과 내에서도 물리 수학 화학 생명과학 등 세부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행에 휩쓸려 자신의 적성을 무시한 채 첨단학과에 진학하게 되면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김기수 기자 오승주 내일교육 기자 sj.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