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일본의 대중 정책 시사점
총선에서 패배한 집권 자민당의 이시바 수상이 어렵게 정권을 운영하고 있다. 야당과 대화를 통한 정치가 필수가 된 상황이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보수 우파(아베파) 권력이 무너져 자민당 내의 실질적인 정권교체도 이루어졌다. 기득권층이 부유하고 대중이 빈곤해지는 양극화 사회를 만든 정치적 책임은 보수 우파에게 있다. 지난 10월 이시바 신내각에는 구 아베파 출신은 한명도 기용되지 않았고 중도보수 성향의 의원들이 임명되었다.
특히 아베파의 큰 미움을 받아왔던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의원이 총무성 대신(행안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그는 아베정권 시기에 특정비밀보호법과 안보법 제정(2015년)에 반대했고, 2022년 아베 사망 후엔 “아베씨는 역적”이라는 발언도 했다. 일본도 이제 정치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자민당 내 정권교체 이루어지며 일본 정치 전환기 들어서
눈을 돌려 국제사회를 보면 국가 간에 대립과 분쟁이 격화되고, 자유 무역은 보호무역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위기와 전환의 시대다. 일본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피는 것은 한국에서 참고가 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일본정부와 기업의 대중정책을 살펴보자. 2013년 시진핑정권이 등장한 이후 아베정권은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보장 정책을 우선하기 시작했다. 2015년 미일동맹을 강화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한 것이 그 사례다. 2016년에는 중국 견제를 위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구상(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 경제적 번영, 평화와 안정)을 발표하는데 이를 미국이 채용한다. 그런데 시진핑정권은 새로 내놓은 ‘일대일로’ 구상에 일본이 지닌 ‘고품질 인프라 능력’을 끌어들이고자 일본 유화정책을 추진한다.
중일 간에는 2006년 합의한 전략적 호혜관계가 유지되었다. 포스트-냉전후 시대에 들어선 2022년 기시다정권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해 특정 중요물자 공급망 확보, 특허출원 비공개 등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3년 11월 기시다-시진핑 정상회담은 전략적 호혜관계를 재확인했고, 올 11월 이시바-시진핑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다시 확인했다. 중일관계는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다. 자민당정권은 보수 우파든 중도파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중국에 대해 경쟁과 보완을 포함한 균형외교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도쿄일렉트론 소니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도요타통상 소지츠 등 기업은 정부의 반도체산업 권토중래, 2차전지 경쟁력 강화 등 방침에 따라 일본 내 관련 설비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설비 투자는 향후 5년간 약 5조엔(43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반도체 굴기’를 추진해온 중국은 2023년 일본의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에 항의하면서 텅스텐 흑연 알루미늄 합금 등 중요 광물 수출통제를 카드로 꺼낸 바 있다. 일본이 특정 중요물자 공급망을 자국 위주로 전환하는 방침은 앞으로 중일 무역마찰의 심화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물자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 제품에 대해서는 중일간 무역과 경제협력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4년 현재도 1만3000개 이상의 일본 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2023년 흑자를 낸 기업은 전체의 60.3%로 2021년 72.2% 수준보다 악화되었지만 그래도 과반수 기업이 흑자다.
국익과 실리 추구하며 균형외교로 가고 있는 일본의 대중 정책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은 한 인터뷰(2024.11.25, 닛케이아시아)에서 “중국산 제품이 고품질과 대량생산을 확보하는 데 핵심이며 중국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탈출에 대해 분명하게 “NO”라고 말했다.
일본정부와 기업의 대중관계를 보면 국익과 실리 그리고 균형외교가 보인다. 경제 안보를 중시하는 시대변화를 선도하기도 하고 이에 따르면서도 한쪽으로만 휩쓸리지 않고 균형을 추구하는 모습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