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파나마문제는 경제보다 기후야”

2025-01-10 00:00:00 게재

하버드대 교수, 트럼프 ‘운하 반환’ 주장에 “가뭄으로 선박 통행 감소” 경고

파나마는 운하의 나라다. 총 82㎞의 파나마운하가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한다. 딱 10년 전 파나마운하의 태평양쪽 입구인 파나마시티 교외의 미라플로레스 갑문을 찾았다. 육중한 화물선들이 대형 풀장처럼 생긴 갑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대서양쪽에서 들어와 태평양쪽으로 나가는 배였다. 운하의 양옆으로 나란히 나 있는 철로 위에서는 예인 기관차들이 화물선을 끌었다.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인 파나맥스급(4만~5만톤) 선박의 통행료가 무려 21만5000달러 정도라고 했다. 연간 약 1만4000척의 선박이 통과한다. 연간 24억~25억달러(3조5000억~3조6800억원)에 달하는 통행료 수입을 올린다. 파나마정부 수입의 24%를 차지하는 규모다. 올해로 개통 111년째인 파나마 운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트럼프 “파나마에 군 투입 검토 가능”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사회관계망(SNS) 포스팅이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미국이 파나마 운하 관리권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파나마 운하를 미국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군대 투입까지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 덴마크령인 그린란드에 대해선 “국가안보와 전세계의 자유를 위해 미국의 그린란드 소유권과 지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21일 SNS ‘트루스 소셜’에 “파나마는 지나치게 높은 요금을 매기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이 파나마에 베풀어온 특별한 관대함을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다음날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열린 한 우익단체 행사에서 트럼프는 “파나마운하가 잘못된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중국의 잠재적 영향력을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어 성탄절에 ‘트루스 소셜’을 통해 “훌륭한 중국군을 포함해 모두가 즐거운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며 “그들(중국군들)은 파나마운하를 불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나마정부는 발끈했다. 호세 라울 뮬리노 대통령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나는 파나마 대통령으로서 파나마운하와 그 인접의 모든 땅은 파나마에 속해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임을 명확히 한다. 우리나라의 주권과 독립은 협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나마운하에는 중국을 포함한 그 어떤 외국군도 결코 주둔하고 있지 않다. 전세계 그 누구라도 파나마운하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트럼프의 도발은 이어졌다. 지난 7일 팜비치에 있는 자신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가 미국의 경제안보와 국가안보에서 중요함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의 통제권 확보를 위해 군사 또는 경제적 강압을 배제할 것이냐”는 질문에 ”두 사안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나는 확언할 수 없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무슨 권리로 엄연히 독립국가인 파나마의 영토권을 접수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로이터통신 등 여러 외신들은 최근 파나마운하의 역사와 트럼프의 관리권 반환 위협의 배경을 다룬 기사를 실었다. 먼저 파나마운하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파나마운하 건설에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은 프랑스였다. 1881년 프랑스 외교관이자 토목 엔지니어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주도로 파나마운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레셉스는 이미 이집트 수에즈운하 건설을 성공시킨 ‘운하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말라리아와 황열병 등으로 노동자가 죽어 나가고 기술문제와 자금부족까지 겹치면서 1889년 레셉스의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만다.

파나마운하 공사는 미국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의해 재개된다. 미국정부는 1904년 50개국 7만5000명의 노동자를 동원해 대역사를 시작한다. 프랑스의 실패를 거울삼아 먼저 방역부대를 선발대로 투입했다. 방역부대는 모기의 서식지인 습지대의 물을 빼거나 고인 물에 벙커C유를 붓는 등 모기 박멸 작전을 벌였다. 포크레인의 전신인 증기 삽과 준설선 등 첨단장비를 동원해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재개 10년 만인 1914년 8월 15일 마침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해상통로가 열린다.

미국은 파나마운하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운하를 관리했다. 파나마운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그 실용성을 여실히 입증했다. 연합군이 전쟁물자를 신속하게 나를 수 있는 중요한 통로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운하 통제권과 파나마 노동자 처우 등을 놓고 미국과 파나마 간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1964년 1월 9일 반미폭동으로 번졌다. 파나마 시위대 23명이 사망하면서 반미감정은 극에 달했다.

2024년 9월 2일 한 화물선이 파나마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카터 대통령이 운하 통제권 이양

10여년 지속된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은 최근 별세한 지미 카터 대통령이었다. 1977년 9월 7일 카터는 당시 파나마 지도자 오마르 에프라인 토리호스 에레라(Omar Efrain Torrijos Herrera)와 파나마운하 협정을 체결한다. 운하는 중립적으로 운영되고 모든 선박에 개방되며 1999년 말까지 점진적으로 파나마에 통제권을 넘겨준다는 내용이었다. 파나마는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운하 통제권을 완전히 넘겨받는다.

하버드대학에서 중남미 역사를 가르치는 데니스 M. 호건 박사는 파나마운하 논란과 관련해 새로운 시각에서 우려를 전했다. 호건 박사는 NYT 신년호에 게재한 칼럼(The Panama Canal Has a Big Problem, but It’s Not China or Trump)을 통해 “파나마운하가 직면한 큰 문제는 중국 혹은 트럼프가 아니라 기후변화”라고 주장했다.

호건 박사는 2023년 7월에 파나마로 연구여행을 다녀왔다. 파나마의 7월은 우기의 한복판이었지만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우려할 정도로 운하의 수위가 낮았다. 그는 “생계를 위해 운하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인 우려, 심지어 공황 상태를 보였다”면서 “가이드는 비로 인한 저수량이 없으면 운하의 수문을 작동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파나마운하의 수문을 통해 배 한척을 보내는 데 약 5000만갤런의 물이 사용된다. 주로 가툰 호수에서 끌어오는 담수다. 최근 몇년 동안 가뭄과 식수 및 생활용수 증가로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감소했다. 이로 인해 파나마 운하청은 때때로 운하를 통과하는 일일 통행 횟수를 제한해야 했다. 한때는 최대 40%까지 제한하기도 했다.”

2023~2024년 파나마엔 기록상 최악의 가뭄이 닥쳤다. 파나마운하의 운송은 지연됐고 운송비는 올랐다. 통행 횟수가 줄어들면서 통행권 경매가 이루어졌다. 운하를 통한 상품 운송 비용은 그만큼 치솟았다. 호건 박사는 “파나마의 탐욕이나 중국의 영향력이 이러한 비용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호건 박사는 “파나마 그린란드에 이르는 트럼프의 확장주의 야망은 한 가지 큰 진실을 가르킨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전세계는 지구촌을 씨줄 날줄로 엮은 공급망에 의존한다. 세계 물류의 장악은 경제안보로 이어진다. 트럼프는 파나마를 접수하면 파나마운하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고, 그린란드를 인수하면 북극을 통과하는 미래의 북서쪽 통로를 미국이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는 파나마운하처럼 항로는 모두에게 동등한 접근 권한을 가진 국가들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하고 통제하고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아닌 기후변화 이겨야

10년 전 파나마를 갔을 때 카누를 타고 밀림을 탐험했었다. 강줄기는 깊은 밀림 속으로 굽이굽이 파고들었다. 작은 카누는 강줄기를 따라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좌우로 펼쳐진 푸르른 정글이 햇빛에 반짝였다. 강물도 푸른빛이었다. 푸른색의 정글이 토해 내는 ‘녹즙’처럼 보였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룩주룩 장대비였다. 하늘과 땅의 구분을 없앨 정도의 세찬 비였다. 온몸으로 장대비를 맞았다. 온 몸에 쌓였던 세속의 찌든 때가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하늘이 주재하는 장엄한 세례성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하늘도 젖고, 땅도 젖고, 숲도 흠뻑 젖었다.

요즘 파나마에 비가 부족하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파나마운하는 무용지물이다. 트럼프는 파나마운하를 다시 차지하려는 욕심을 내기 전에 기후변화 대책을 서둘러야 하는 건 아닐까? 바보야, 파나마운하의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기후변화야!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