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14 영산도 둘레길
하루에 40명만 허락하는 귀한 섬
불편해도 소란하지 않은 고요 즐겨
입도 관광객 수를 하루 40명으로 제한하는 까다로운 섬이 있다. 신안 영산도다.
유명세를 탄 섬들은 수용용량을 초과하는 오버투어리즘 때문에 섬도 힘들고 관광객도 힘들다. 하지만 영산도는 입도객 총량제를 시행하고 있어 예약한 사람만 입도할 수 있다.그래서 주말이나 성수기에도 붐비지 않고 한적하다. 섬 속의 섬, 영산도(靈山島)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아득하다. 목포항에서 직항이 없으니 흑산도까지 두 시간 쾌속선을 타고 가서 또 한 번 배를 갈아타야 한다.
게다가 입도객 수 제한으로 쉽게 드나들 수도 없다. 그런데도 섬을 찾는 이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불편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아 고요한 섬을 오롯이 즐기다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딱 40명의 관광객에게만 허락된 귀한 섬.
영산도에는 백섬백길 41코스인 영산도 둘레길이 있다. 영산도 둘레길은 영산도 당집을 거쳐 서해 일출을 볼 수 있는 깃대봉을 지나 작은재를 넘어 다시 영산도 항으로 돌아오는 3.9㎞ 섬길이다.
당산으로 오르는 계단 중턱에는 영산도의 신전인 당집이 있다. 당집에는 당산조모님 당산조부님 소저애기씨 별방도련님 도산신님 김첨지영감님 등의 신들이 좌정해 계신다.

일반적으로 바다를 주관하는 용신에게 제를 드리는 ‘둑제’는 용신이 주신인데 특이하게도 영산도에서는 김첨지영감님이 주신이다. 옛날에는 3년에 한 번씩은 소까지 잡아 바치며 당제를 지냈을 정도로 당은 절대적인 신앙의 성지였지만 당제의 맥이 끊긴 지 오래다.
외지인들은 쉽게 오르는 당산이지만 정작 영산도 노인들은 올라보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섬 주민들의 토속 신에 대한 외경은 여전하다. 먼바다 섬, 늘 사나운 파도와 태풍의 위협에 시달리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당산은 본래 초가였는데 낡아서 주저앉아 버리자 서울의 향우회 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해 주었다. 당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길은 전망대에서 영산 마을 뒤쪽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산 능선 길에서는 흑산군도 섬들과 영산도 마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영산도는 지금 30여 가구가 살지만 1960년대에는 100여 가구 1000여명의 사람들로 북적이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액기미라는 작은 마을도 있었으나 지금은 폐촌이 됐고 큰 마을인 영산리 하나만 남았다.
옛날에는 영산도에서도 돛을 세 개나 단 전통어선 중선을 타고 홍어잡이를 했다. 주로 가까운 태도 서바다와 홍도 서쪽 바다에서 잡아오곤 했다. 조기는 더 먼 바다로 나가서 잡았다. 한때는 주머니처럼 생긴 그물인 낭장망으로는 멸치를 잡기도 했다. 돌미역, 돌톳, 돌김 등 해초도 채취했다.
그런데 바다도 가뭄이 들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생선도 잘 안 잡히고 해초류도 예전 같지 못하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대형 선단의 싹쓸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산도 연안 어장의 씨를 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산도에는 외부에서 해산물이 들어오는 것이 금지다. 마을 식당에서는 오로지 섬에서 생산되는 해산물만 식재료로 쓰고 특산물로 판매한다.
섬의 경쟁력은 관광객 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섬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이야말로 섬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국 섬에서는 최초로 입도객 총량제를 시행 중인 영산도. 영산도는 한국 섬들의 미래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