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트럼프 2기의 숙제 - 빅테크 출신과 마가진영의 갈등
“우리에게 새로운 스타가 생겼다. 스타 탄생 - 일론!” 지난 11월 트럼프가 당선 직후 연설을 하면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특별히 지목해 한 말이다.
일론 머스크는 순자산 4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 부자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뒤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그야말로 올인했다.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최근 집계 결과를 보면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을 위해 직접 설립한 슈퍼팩(Super PAC 정치자금 모금 단체)인 ‘아메리카 팩’에 2억3900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그가 트럼프 캠프에 기부한 금액은 2억5000만달러가 넘는다. 직접 유세 지원에도 여러차례 나서며 그야말로 물적 심적으로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힘썼다.
‘킹메이커’ 공로를 인정 받은 머스크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체제 하에 신설되는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에 지명되는 등 트럼프 최측근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트럼프 당선으로 얻을 경제적 이익 또한 확실해 보인다. 테슬라, 스페이스X, 스타링크 등 머스크가 소유한 회사는 정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규제완화를 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트럼프정부에서 그가 얻을 경제적 이익 또한 엄청날 것이다. 대선이 치러진 11월 초 이후 불과 한달 만에 테슬라 주가는 70% 이상 급등했다. 이에 따라 테슬라 최대 주주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테크산업 이해관계 더 큰 영향 미칠 것
트럼프 1기정부 때와 달리 2기정부 주요 보직에 머스크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 인사들이 대거 기용되면서 오랫동안 고숙련 해외인력에 의존해 온 테크산업의 이해관계가 정부 정책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화답하듯 테크기업의 리더들은 트럼프 취임식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트럼프에게 구애를 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소셜미디어(SNS) 대기업인 메타가 자사 플랫폼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게시글에서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제3자 팩트체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메타는 2016년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 뉴스와 음모론 확산을 막으려고 허위 정보가 포함된 게시물에 표식을 해왔는데, 이제 더이상 팩트체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 주요 언론은 이번 결정이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한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의 ‘선물’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트럼프정부가 정식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머스크로 대변되는 빅테크 지지자들과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는 트럼프의 전통 지지층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사이의 충돌과 균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12월 말 이민정책과 미국 노동시장에서 외국인 숙련노동자의 위치를 놓고 트럼프 지지자들과 머스크가 온라인 상에서 격돌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22일 트럼프는 인도계 IT 벤처기업가이자 머스크와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스리람 크리슈난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의 인공지능(AI) 수석 정책고문으로 지명했는데, 다음날 바로 트럼프 충성파 극우 논객인 로라 루머가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루머는 SNS 팔로워가 140만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로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 발언과 음모론을 퍼뜨려왔다. 그로 인해 트럼프 눈에 들어 유세 기간 동안 트럼프 전용기까지 탑승하며 트럼프를 밀착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루머는 지난해 11월 크리슈난이 SNS에서 “고숙련 이민자에 대한 영주권 제한을 없애는 것은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면서 머스크에게 검토를 요청한 것을 지적하면서, “제3세계 침략자들”이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크리슈난이 트럼프정부의 이민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의제에 정반대되는 견해를 공유하면서 현재 트럼프정부에서 일하도록 임명된 많은 커리어 좌파들을 보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적었다.
이에 머스크가 바로 반격에 나섰다. 머스크는 미국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이 “미국에는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H-1B 비자’를 통한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 채용 정책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아공 출신의 귀화 미국인인 머스크는 “내가 스페이스X와 테슬라, 미국을 강하게 만든 수백개의 다른 회사들을 구축한 수많은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 미국에 있는 이유는 H-1B 비자 덕분”이라며 “H-1B 비자를 확대해 더 적극적으로 외국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전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반(反)이민 강경파 트럼프 지지자들의 입장과 정면충돌한 것이다.
외국인 숙련노동자 놓고 온라인에서 격돌
이 설전에 머스크와 함께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지명된 인도계 기업가 출신 정치인 비벡 라마스와미도 “미국 문화는 너무 오랫동안 탁월함보다는 평범함을 숭배해 왔다”면서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자보다 졸업 파티 여왕을, (우등생) 졸업생 대표보다 운동을 많이 하는 남학생을 더 찬양하는 문화는 최고의 엔지니어를 배출해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남아공 이민자 출신 실리콘밸리 기업가로 백악관 ‘AI - 가상화폐 차르’로 지명된 데이비드 색스도 머스크를 지지하며 가세했다.
루머는 머스크를 향해 “그는 MAGA가 아니고 트럼프정부로의 이행을 방해하는 인물”이라며 머스크는 트럼프와의 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부를 더 축적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트럼프 오른팔 역할을 하면서 트럼프 1기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 또한 이 논쟁에 가세했다. 배넌은 “취업비자는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아 외국에서 온 계약직에게 줘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려는 사기극”이라며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H-1B 비자를 확대해 이민 시스템을 조작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빅테크를 ‘과두정치 독재자(oligarch)’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머스크를 백악관에서 쫓아내겠다고 공개 저격했다.
공화당 대선주자에 도전했던 니키 헤일리도 “테크산업에 노동자가 필요하다면 교육 시스템에 투자하라”면서 인력을 다른 곳에서 찾기 전에 미국인에게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런 트럼프 지지자들의 입장처럼 실제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H-1B 비자가 미국 노동자들을 대체하는 것으로 남용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통령 임기 중인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로 H-1B 비자 발급을 중단한 적도 있다.
균열은 이제 시작, 앞으로 더 커질 것
온라인 논쟁이 계속되자 트럼프는 12월 28일 뉴욕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H-1B는 훌륭한 프로그램이고 나는 이를 항상 지지해 왔다”며 일단 머스크와 빅테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 논쟁을 ‘MAGA 내전’이라 부르면서 트럼프의 전통적 지지층과 대선 과정에서 엄청난 선거자금을 지원하면서 새로 유입된 빅테크 지지자 간의 주도권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혁신재단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새뮤얼 해먼드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미래의 더 큰 갈등의 징후이고 본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것이다. 이번 논쟁이 취업비자에 대한 사소한 다툼처럼 보이지만 실은 훨씬 더 깊은 균열의 신호라는 것이다. 미국 우선 국수주의 MAGA 진영과 세계화주의 억만장자들이 한배를 탔지만 서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르기에 이 정치적 연합의 균열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사이에서 트럼프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 나갈지가 트럼프 2기정부 앞에 놓인 난제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