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용의 러시아 톺아보기

트럼프 2.0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시각

2025-01-23 13:00:03 게재

트럼프 2기 출범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속내는 복잡하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전쟁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그의 정치적 야심을 반영하기에 ‘기회의 창’을 놓치지 말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중한 낙관주의’에 반해 미러관계의 조기 정상화 가능성에 환상을 갖지 말라는 경계의 목소리도 들린다. 트럼프는 1기 때 훨씬 더 유리한 조건에서도 정상화에 나서지 못했고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러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위기 상황이라는 논거를 들이댄다.

신중한 낙관주의는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경험과 달라진 환경에 주목한다. 그는 8년 전과 비교해 경험 많고 더 노련한 정치인으로 돌아왔다. 1기와 달리 행정부는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측근 인사들로 구성됐다. 공화당이 상하원의 다수당이니 의회의 견제도 비교적 쉽게 돌파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제 소신대로 일관되고 결단력 있게 대러 협상을 진행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본다. 게다가 그는 세계를 ‘가치’의 잣대로 보는 지도자도 아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앞세우며 협상 힘겨루기 압박을 즐기는 ‘사업가’이니 어떤 식으로든 양국간 합의 가능성은 커졌다고 본다.

미러관계, 낙관적보다 회의적 시각 커

반면에 트럼프의 복귀에 환호하지 말고 침착하게 러시아의 이익을 고수하라는 회의론적 시각이 훨씬 강력하다. 이들은 트럼프 개인의 기질과 행태, 즉 도발적인 발언과 정치적 변심,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결정 등에 휘둘리지 말고 ‘립 서비스’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회의론자들은 기본적으로 러시아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당 기간 관계개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러시아 고등경제대학 유럽·국제문제종합연구센타의 인나 야니케예바 박사는 트럼프의 입장이 ‘힘을 통한 평화’라는 원칙에 기대고 있는 한 미러 양국이 기존의 심각한 견해차를 극복하고 전략적 안정을 회복해 관계를 ‘리셋’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한다. 러시아 국제문제위원회 학술위원장 안드레이 코르투노프 박사는 ‘신중한 낙관주의’를 견지한 학자이지만 트럼프의 성급하고 예상치 못한 대외정책 조치들이 새로운 갈등, 심지어 미군이 개입하는 군사적 충돌을 촉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미러간 쟁점들에 대한 상호 의견차가 크기 때문에 아직은 과도한 기대도 환상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우선 미러관계 개선으로 나가는 관문인 우크라이나 종전이 불확실하다. 트럼프는 모스크바와의 대화를 복원하고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언했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접근은 바이든정부처럼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안기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우크라이나 문제란 미국의 국익 실현을 위한 게임에서 사용될 하나의‘카드’일 뿐이다. 러시아는 트럼프의 이런 차별성이 타협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우크라이나전쟁 상당히 지속될 것 전망

하지만 소통 그 자체가 문제 해결은 아니다. 아직 트럼프는 실행 가능한 중재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구상은 그저 현 상태를 ‘동결’하고 대화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비무장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고 답한다. 푸틴의 일관된 원칙이다. 더 이상 휴전이 우크라이나를 재무장시키는 시간벌기로 활용되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전쟁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호언을 신뢰하기도 어렵지만 정작 트럼프가 1기 때 키이우에 무기 수출을 결정한 당사자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의 안드레이 수센쵸프 학장은 미국이 트럼프 2.0시기에도 우크라이나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하면서 ‘안정적이지만 관리가능한 긴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저강도 위기는 미국이 과도한 확전과 군사적 패배의 위험을 피하도록 하고, 동시에 유럽이 자체 안보비용을 지불하도록 설득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결국 미국이 러시아의 국익과 상충되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제재와 관련된 쟁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제재와 관련된 쟁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러시아의 ‘제재 전쟁’ 전문가인 이반 티모페예프 교수는 미러관계 정상화에 환상을 갖지 말라고 조언한다. 지난 1월 10일 신년 벽두부터 미국은 제재 대상자, 수출통제 및 기타 제한 조치를 확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2021년 4월 15일 행정명령 14024호 제1조에 따라 이미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는 시행되었지만 이제는 자회사를 넘어 모기업까지 제재가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 15일에도 제재를 단행했다. 중러간 금융거래에 연루된 것으로 판단하는 키르기스스탄의 케레메트 은행 등 기업에 대한 제재다. 특이점은 과거 행정명령 14024호에 근거해 제재 대상에 포함한 수십 개의 러시아 기업을 다시 행정명령 13662호를 근거로 제재한 것이다. 법률적으로 행정명령 14024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목록 해제가 가능하다. 반면에 행정명령 13662호에서의 해제는 반드시 의회와의 조율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즉 트럼프행정부가 대러제재를 완화하지 못하게 두터운 ‘장벽’을 치는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는 트럼프정부가 제재 정책에서 유화적 기조를 가져갈 것이라 믿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경계심이 강하다. 트럼프가 러시아를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 퇴출시키려고 파이프라인 사업에 대한 대러 제재를 지지한 자였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미국이 글로벌 시장 변동성을 우려해 한꺼번에 제재하지는 않겠지만 하나씩 특별제재대상(SDN) 명단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는 16일 인준 청문회에서 제재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신중한 입장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략의 한 부분으로 요청한다면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데리고 올 수준까지 제재를 강화하는 데 100% 찬성한다”고 발언했다. 특히 러시아 주요 석유 기업에 제재를 강화할 의지를 보였다.

러시아는 당분간 제재와 관련된 근본적인 상황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측한다. 이론적으로 우크라이나 분쟁이 해결된다면 해제가 뒤따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종전 ‘거래’의 성사 가능성도 의심스럽고, 설사 ‘거래’가 성사되더라도 미국이 자동해제 조치를 전격 단행할지도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중국 무력화’ 트럼프팀 합류는 환상

미러관계 개선에서 중러관계의 향방도 중대한 쟁점이다. 트럼프의 미국에게 최대 적국은 중국이다. 미국이 반중전략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데 있어 러중연대는 결정적 방해물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 미국이 대미 관계 개선을 원하는 러시아를 향해 미-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이 질문에 러시아 과학원 중국·현대아시아연구소장 키릴 바바예프 박사는 “러시아는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과의 화해를 위해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중국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미래 전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작년 말 위 연구소가 출간한 ‘중국-2049: 미래 분석’보고서는 2049년을 전망하며 중국과 서방의 힘의 균형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 예측했다. 중국은 지속 발전하겠지만 이전만큼 고속은 아니고 서방은 위기를 맞겠지만 그 충격이 파국적인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러시아는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미국과 건설적인 접촉을 통해 서방 및 동방과 균형 잡힌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유도된다.

최근 중러교역 추세만 봐도 러중관계의 이완을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2024년 교역규모는 전년 대비 1.9% 증가해 2448억1900만달러를 기록했다. 성장세가 2022년(29.3%)과 2023년(26.3%)에 비해 현저하게 완만해졌다. 하지만 혹독한 제재를 극복하며 지켜낸 플러스 성장이다. 러시아로서는 향후 무역 구조의 질적 개선도 기대하기에 중국과 결별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더구나 최근 러시아의 엘리트들은 더 과감하고 결연하게 ‘피벗 투 아시아’정책을 펼쳐갈 것을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에게 ‘중국을 무력화’하려는 트럼프 마가팀에 합류할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트럼프 2.0을 바라보는 러시아의 시각에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 미러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동하지만 아직 ‘기회의 창’은 왜소하고 위태롭다. 트럼프가 ‘딥 스테이트’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도 불명확하지만 과연 푸틴이 트럼프가 야망을 실현하고 협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공간’을 내어줄지도 의문이다. 아직 유라시아 평원에 포성은 멈추지 않았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물류통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