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한국의 시간, 세계경제의 시간

2025-02-05 13:00:03 게재

2024년의 마지막 한달과 2025년 새해의 첫달은 멈춰 선 한국 사회의 시간과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흐르는 세계경제의 시간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보게 만들었다. 연휴기간 내내 한국의 방송과 언론은 계엄과 탄핵의 공간에 묶여 있었다. 날이 바뀌어도 같은 이야기라 나중에는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다. 반면 같은 기간에 해외의 언론은 온통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DeepSeek) 이야기와 AI 발전의 신국면과 미-중 AI 전쟁으로 넘쳐났다.

두번째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예고한 대로 멕시코 캐나다 중국에 관세폭탄을 때렸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즉각 보복관세를 내세웠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들고 나왔다. 미국의 나홀로 호황을 배경으로 지속되던 달러 강세에 기름을 부었다. 달러위안환율과 달러엔환율이 급등했고 안정되는 듯 했던 원화환율은 곧장 1470원대를 다시 돌파했다. 일본의 닛케이지수가 1.89% 하락했고, 홍콩 항셍지수와 대만의 자취안지수가 2~3%대 하락을 보였다. 곧 이어 코스피가 급락했다.

그 다음날 아침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부과를 한달 간 유예했다. 몇시간 뒤 개장한 코스피지수와 원달러환율은 다시 반등하고 또 하락했다. 트럼프 말 한마디에 세계 금융지표가 널을 뛰었다.

계엄으로 멈춘 시계, 트럼프 불확실성 더해

딥시크가 알려지기 며칠 전 그러니까 연휴가 시작되던 날 필자를 놀라게 했던 소식은 양자컴퓨터를 신약개발에 활용한 세계 최초의 가시적인 성과에 관한 것이었다. 췌장암 폐암 대장암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신약후보물질을 찾았다는 것인데 슈퍼컴퓨터로 40년 걸려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가 해결될 실마리를 찾았다는 게 연구를 주도한 미국 바이오 기업 인실리코메디신의 최고경영자가 내놓은 해석이다. 이와 함께 생성형AI와 양자컴퓨터의 결합을 통해 치료제 개발이 불가능했던 영역을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같은 날 같은 신문의 다음장에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최근 5년간 채무조정 실적 자료’에 근거한 기사가 실렸다. 2024년 생활고 등으로 빚을 못 갚아 채무조정(신용회복) 절차를 밟는 한국의 개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 11만~12만명 수준을 유지했던 채무조정 확정자수가 2023년에 16만명대로, 2024년에 17만5000명선에 근접했다. 장기채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워크아웃 확정자도 또한 급증세다.

지난달 23일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5%로 전망하는 새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물론 성장률은 경제 상황의 한가지 지표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투자은행을 신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전망값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추세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초에 내놓은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전망치 평균값은 1.7%였다.

전망치를 낮춘 이유에 대해서 침체된 경제심리와 모든 경제부문의 활동이 둔화됨으로 인한 소비회복의 지연, 그리고 이에 더해 수출이 하향주기에 들어섰다는 점을 들었다. 석유화학 철강 등을 필두로 주요 제조업에서 심화되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격화로 인한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구조적 장기적 요인이 경기상황을 넘어 한국경제의 근저에 깔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미국경제의 독주에 더해 합리적으로 해석하기가 어렵고 또 그 안에서 모순과 충돌이 곳곳에 숨어있는 트럼프의 공약과 정책들은 세계경제 전체로 보면 불균형을 확대시키고 불안정성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국에 대해서는 유예없이 10% 추가관세가 실행되었으며 중국당국은 즉각 미국산 석탄 농기계 등에 15~20% 보복관세 부과를 선언했고 구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했다. 관세전쟁은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이전에 이미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환율위기와 금융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태에서 이들의 추가적인 통화약세는 어디에서든 경제위기가 터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들을 양산한다.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하는 프랑스와 2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는 독일은 유럽경제마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 대체할 유일한 경제지만 정치가 문제

그러나 모든 것을 불안하게 볼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여전히 IT강국이며 중국과의 경제적 충돌 가운데 미국이 필요로 하는 주요 제조업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제다. 조선업을 필두로 전력장비나 전선과 같은 인프라스트럭처 분야, AI 시대의 필수품으로 등장한 원전 등 한국 제조업의 제2 전성기가 성큼 다가와 있다.

다만 이 기회를 현실화하느냐 마느냐는 대통령이 멈춰 놓은 현실에서 국회의원 300명 손에 달렸다. 300명 모두가 멈춘 한국의 시간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얽히고설킨 위험요인과 기회요인을 엮고 풀어서 새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