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개헌으로 가는 길

2025-02-06 13:00:05 게재

계엄-탄핵정국의 수습 양상이 아직도 혼란스럽다. 사법일정을 밟아가는 것 자체가 힘겨울 정도다. 이것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버티기와 뻔뻔함이다.

현 집권세력(주류)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야당세력에 대한 적대감정과 혐오를 부추기며 연명해왔다. 문재인정권을 거쳐 윤석열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586세대 기득권층론’과 ‘더불어민주당 범죄자 집단론’ ‘이재명=범죄자론’을 적극 생성·유포했다. 이른바 민주당-이재명 ‘악마화 전략’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세력에 대한 열성 지지층과 중도층 일부의 부정적 인지와 비호감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크게 패배했다. 그러더니 극우유투버들이 주장해온 부정선거론을 대통령이 믿고 키워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정국이 만들어졌다. ‘악마라면 부정선거를 했을 게 분명하다’는 자기 믿음의 늪에 빠져든 것이다. 이는 현 집권세력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이념과 비전과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한 세력임을 의미한다.

그런 이들이 최근 개헌론을 들고 나왔다. 명분은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견 수렴을 위한 개헌특별위원회도 만든다. 집권세력의 지지도가 오르긴 했지만 정권교체 여론이 우세해 (조기) 대통령 선거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나온 다분히 정략적인 포석이다. 개헌안의 구체적 내용이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주요 기조는 ‘다 뺏기기보다 조금이라도 나눠 갖겠다’는 심산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

대통령 선거 승리 전망을 낙관하는 이 대표와 민주당(주류)은 개헌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제를 손봐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개헌 논의를 정략 차원에서 전개하지 못하게 할 책임도 져야 한다. 단지 대통령 임기 조정 같은 수준에 그치면 안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정치-사회,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중앙-지방, 대기업-중소기업, 시장(기업)-시민 간의 권력관계구조 개편과 사회권 신장을 통해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해가며, 민주공화제 수호의 규범을 강화하는 ‘사회적 약속’을 이뤄내는 개헌의 길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 즉 정치경제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분권과 자치’를 향한 개헌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 이는 개헌의 길에서 국정운영의 이념과 비전과 전략을 벼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개헌의 추진동력을 시민의 깊고 넓은 참여에서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당내 비명계의 개헌 논의 요구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현 정국 하에서 민주공화제 수호의 규범을 지니고 실천한 여러 정치세력과 시민들과도 ‘개헌연대’를 꾸려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합의 모형에 기초한 개헌’을 이뤄내야 한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경험했던 직선제 개헌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 같은 역사적 사례의 현재적 버전을 모색해보라는 것이다.

어차피 개헌을 위해서는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에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운동 과정을 생략할 수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만약 또 다시 양대 정당 간의 밀약으로 개헌이 이뤄진다면, 바꾼 헌법의 정당성 확보는커녕 정국의 혼란함마저도 수습하기 어렵게 된다. 최근 서울서부지법 침탈 사태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헌법기구의 권위와 신뢰도 취약한 현실을 고려하면 그럴 공산이 크다.

우경화 정책 수용할 토양부터 만들어야

이 대표가 최근 ‘반도체 주52시간 예외’ 수용 등 (친기업적) 중도층 지지 확보를 위해 노선 변경을 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우경화’ 전략으로의 선회다. 이 대표를 오래 알고 지낸 당안팎 인사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원체 실용주의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새삼 우경화 딱지 붙이기는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중요한 건 대한민국에서 그와 같은 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현실에 놓여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즉 노동의 교섭력과 약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수준이 높다면 노동시간 정책은 상황과 업종 성격에 따라 노동과 자본의 민주적 협의 속에서 변경할 수 있다. 그런 현실의 조성을 동반한 노선변경 구상과 계획을 공표해야 불필요한 논란과 내부분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 조성의 구상과 계획을 개헌안을 통해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개헌과 노선 변경의 길로 들어서길 기대한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 휴마니타스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