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미국 없는 무역’ 모색중

2025-02-07 13:00:04 게재

트럼프의 ‘어리석은 관세 장벽’에 새로운 다자·양자협상으로 대응

역사상 가장 크고 치열한 무역전쟁은 무엇일까? 아마도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주도한 유럽대륙 봉쇄정책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이 세계 패권을 다투던 시기였다. 1804년 프랑스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은 유럽대륙을 평정한 뒤 영국마저 복속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라는 초강수를 꺼내 든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일어선 영국은 해외 식민지를 넓히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부상하고 있었다. 대륙 패권을 쥔 프랑스와 해양 패권을 장악한 영국은 해외 식민지와 무역을 둘러싸고 전방위적으로 충돌했다. 나폴레옹은 1805년 10월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구성해 영국으로 진공한다. 그러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해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만다.

나폴레옹이 꺼내든 다음 카드는 ‘대륙봉쇄’라는 무역전쟁이었다. 1806년 11월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을 정복한 후 ‘베를린 칙령’을 발표한다. 영국과의 모든 무역과 왕래를 일절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듬해 12월에는 ‘밀라노 칙령’으로 대륙봉쇄를 강화했다. 러시아와 북유럽, 지중해 연안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 철벽을 둘러친 것이었다.

대륙봉쇄로 영국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더 큰 피해를 입은 쪽은 영국과의 무역의존도가 높았던 유럽이었다. 특히 농업국이었던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자국 농산물을 영국에 수출하고, 영국산 공산품을 수입하는 나라들이었다. 대륙봉쇄로 이들 나라의 재정은 파탄나고 국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결국 궁지에 몰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반기를 든다. 1810년 12월 러시아 차르 알렉산더 1세는 ‘중립국 무역에 관한 규정’을 반포하면서 영국과의 무역을 재개한다. 격노한 나폴레옹은 61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선다. 그러나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와 식량보급의 어려움 등으로 나폴레옹은 패퇴하고 만다.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나폴레옹 제국은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요즘 미국과 중국 간 이른바 ‘G2패권 다툼’은 200여년 전 영국-프랑스 간 충돌을 떠올리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여러 면에서 나폴레옹을 닮았다. 트럼프는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과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대립한다. 국경에 담장을 쌓고 경비를 강화하는 등 나라를 봉쇄한다. 파나마와 그린란드, 가자지구 등 다른 나라 땅을 넘보면서 확장주의 성향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미국을 관세장벽으로 둘러치는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와 닮은 점이 많다. 트럼프 발 세계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일(현지시간) 중국과 캐나다, 멕시코를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장 4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캐나다에 대해서도 같은 날부터 25%의 관세를 적용키로 했지만, 전날 두 나라와 ‘불법이민 마약유입 차단을 위한 인력 1만명 투입’ 등의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관세 부과를 한달간 유예했다. 중국은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고 있다.

WSJ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틀 연속으로 트럼프의 무역전쟁을 질타하는 사설을 실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계무역질서의 탄생을 점치는 칼럼을 실었다.

WSJ는 지난 1일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The Dumbest Trade War in History)’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면서 우려를 전했다.

“트럼프는 때때로 미국이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고 모든 것을 국내에서 만드는 완벽한 폐쇄 경제가 가능한 것처럼 말한다. 우리는 자급자족 경제에서 살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WSJ은 2일 또 다시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의 파장이 시작됐다(The Dumbest Trade War Fallout Begins)’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 관세전쟁의 우매함을 질타했다. WSJ는 “캐나다와 멕시코는 새로운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트럼프 관세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며 “앞으로 (미국의) 친구와 적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재조정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FT, 관세전쟁으로 국제왕따

FT는 WSJ보다 먼저 “미국 왕따” 조짐을 짚는 글을 실었다. 루치르 샤르마(Ruchir Sharma) 록펠러 인터내셔널(Rockefeller International) 회장은 지난달 26일 FT에 ‘세계는 지금 미국 없는 무역으로 이동중(The world is moving on to trade without the US)’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모건스탠리 신흥시장 총괄사장 출신인 샤르마는 그동안 “미국의 경제 성과가 막대한 부채로 부풀려졌으며 ‘모든 거품의 어머니’가 곧 터질 것”이라는 경고를 해 온 인물이다.

샤르마는 칼럼에서 “많은 국가들이 트럼프의 관세에 대해 보복으로 대응하는 대신 다른 무역 파트너와의 구애로 활로를 찾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샤르마는 ‘미국 없는 세계 무역’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2017년 이후 미국은 유럽연합(EU) 및 아시아와의 파트너십 회담을 포기했다. 미국은 단 하나의 새로운 무역협정도 체결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9개의 협정을 체결했다. EU는 8개의 협정을 성사시켰다. EU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의 25년간 협상 끝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마무리했다. 멕시코는 트럼프에 대한 대비책으로 EU와 무역협정을 맺었고, 남미 다른 국가와의 거래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세계는 코로나와 관세폭탄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선진국들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개발도상국은 제품과 서비스 수출 모두 강한 신장세를 나타냈다. 여러 나라들이 다자간·양자간 협상을 통해 무역을 늘렸다.

샤르마는 “지난 8년 동안 세계 무역의 중심지는 미국에서 중동과 유럽, 아시아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와 폴란드, 특히 중국의 점유율이 크게 높아졌다”면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0개의 무역회랑 중 5개는 중국을 종착지로 하고 있으며, 2개만이 미국을 종착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운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트럼프는 물론 바이든까지 일부 가세한 관세전쟁은 주요 타깃인 중국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미국의 우방들이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서도록 내모는 결과만 초래하고 말았다. 19세기 초 유럽국가들이 나폴레옹의 유럽봉쇄에 맞섰던 것처럼 21세기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관세전쟁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100여년 전에도 관세장벽으로 인한 왕따를 경험한 적이 있다. 1920년대 말 시작된 대공황 때의 이야기다.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공장은 문을 닫았고, 실업자들이 거리에 넘쳤다. 집과 자동차가 헐값에 매물로 나왔다.

당시 허버트 후버 행정부는 대공황의 원인을 국제무역으로 지목했다. 값싼 외국상품들 탓에 미국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1929년 보호무역주의자인 리드 스무트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 하원의원은 2만여개 수입품의 관세를 대폭 끌어올리는 법안을 제출했다. 1930년 6월 후버 대통령은 산업계와 학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서명했다.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의 자오타오(趙濤) 교수와 금융전문가인 류후이(劉揮)는 공저 ‘세계사를 바꾼 15번의 무역전쟁’에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국제무역에 높다란 죽음의 장벽을 쌓은 셈”이라고 썼다.

“전세계 대부분의 선박이 운항을 멈추고 철강업부터 어업 농업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았다. 특히 유럽국가들이 격렬히 반발했다. 34개 국가가 정식으로 항의를 표명하고 서신을 보냈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를 본 나라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보복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전례없는 규모의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트럼프의 관세장벽이 세계를 또다시 ‘각자도생’의 전쟁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루속히 내란상태를 정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을 쩌억 벌린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