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와 두가지 추상화(抽象化)
맥도날드 형제의 메뉴 단순화와 크록의 탈지역으로 미국식 세계화 상징 돼
출가한 지도 만 16년이 되어간다. 물론 여기서 출가란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의미다. 안온한 학교의 품을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15년 11개월이 넘었다. 이 가운데 8년을 국외에서 보냈으니 절반 이상 세계를 떠돈 셈이다. 사실 세계는 불교의 시간 개념인 ‘세(世)’와 공간 개념인 ‘계(界)’에서 유래한 단어로 영어 표현 ‘world’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표현이 시작된 배경을 고려하면 세계는 시공간을 의미하므로 꼭 외국을 나가야만 세계인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이제 한국어 언중은 세계적이라는 표현을 국제적이라는 말과 별다른 구분없이 구사하고 있다.
8년의 국외 생활 중 5년을 이란 테헤란에서 지냈고 3년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필자에게 둘의 국제적 연결고리는 맥도날드다. 오랜 시간 경제제재를 받는 이란의 현실이 이방인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사례는 맥도날드의 부재였다.
미국식 세계화의 상징으로 지구 웬만한 곳에 다 있는 맥도날드가 테헤란에는 없었다. 매시도날드라는 이란판 유사품이 있었지만 맥도날드를 어설프게 흉내낸 정도에 불과했다. 이스탄불이나 두바이 출장을 다녀올 때면 가족을 위해 공항에서 빅맥 몇 개를 허겁지겁 챙겨야만 했다. 사회학적으로 분명 촌스러운 행위였겠으나 미각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일하러 갔을 때도 처음 찾아간 식당이 맥도날드였다. 이번에 맥도날드를 바라보는 창은 미국식 창업가정신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시골에서 시작한 햄버거 가게가 어떻게 몇십년 만에 전 지구적 회사가 되었는지,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인지가 관찰자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만약 비결을 찾는다면 이는 미국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한국에서도 가능한 일인지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었다.
커다란 숙제를 마주한 사람으로서 막막함에 압도됐다. 출발은 언제나처럼 맥도날드가 처음 시작한 곳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집에서 402마일, 약 647㎞ 떨어져 있던 샌버너디노 지역으로 차를 몰았다.
메뉴 단순화 해 패스드푸드 원형 만들어
1940년 아일랜드계 미국인 맥도날드 형제는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 14번가에서 식당을 연다. 가게 상호는 형제의 이름을 딴 ‘맥도날드네 바비큐(McDonald’s Bar-B-Q)’였다. 초창기 맥도날드는 바비큐 음식을 주로 파는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이었다.
종업원 20명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자동차로 가 손님의 주문을 받고 음식이 만들어지면 자동차까지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자동차 안에서 바비큐를 먹었다. 1945년 미국에서 판매된 자동차는 7만대였지만 1950년에는 600만대를 넘긴다. 자동차 문화의 폭발적 확산만큼 맥도날드의 인기도 늘어났다. 125대 차량의 주문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할 정도였다.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하기 벅찼던 맥도날드 형제는 레스토랑을 혁신하기 위해 과감히 3개월간 문을 닫는다. 형제에게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다. 어떤 손님은 레스토랑 주변에 모여드는 부랑자들을 보고 운전대를 돌렸다. 어떤 가족은 저녁 준비에서 엄마를 해방시키려고 레스토랑에 왔지만 자동차까지 가져다준 음식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많은 손님이 포드와 뷰익을 타고 해변에서 서핑과 태닝을 즐기러 가는 길에 드라이브인 레스토랑에 들렀지만 음식을 받기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형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고 1948년 12월, 맥도날드는 새로운 모습으로 매장을 다시 연다.
맥도날드 형제는 바비큐 그릴을 없애고 메뉴를 단순화했다. 25가지나 되던 메뉴를 9개로 줄였다. 햄버거 치즈버거 감자튀김 밀크셰이크와 다섯가지 음료였다. 음료는 콜라 우유 커피 루트비어 오렌지주스다. 이를 카테고리로 분류하면 버거 감자튀김 음료 딱 세가지로 볼 수 있다. 또한 형제는 햄버거를 규격화했다. 햄버거에는 케첩 머스터드 양파, 그리고 피클 두 조각이 들어갔다.
자동차에서 주문받은 음식을 자동차까지 배달해주던 방식도 폐기했다. 손님들은 서비스 창구에 와서 직접 주문을 하고 시킨 음식을 직접 가져가야 했다. 맥도날드 형제는 자신들이 고안한 신개념 비즈니스 방식을 스피디(Speedee) 시스템이라 이름 붙였다. 퀵서비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전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나날이 번창하던 맥도날드는 주문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밀크셰이크 여러 잔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믹서가 필요했다. 1954년, 52세의 체코계 미국인 레이 크록(Ray Kroc)은 밀크셰이크용 믹서를 팔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레이 크록이 판매하는 믹서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거래처였다. 당시 맥도날드는 레이 크록에게 구매한 여덟대의 믹서로 밀크셰이크를 한번에 40잔씩 만들어냈다.
작은 시골에서 다량의 주문이 들어오던 게 의아했던 레이 크록은 직접 샌버너디노를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퀵서비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방식에 감화된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가 캘리포니아를 넘어 전미(全美)로, 나아가 전세계로 퍼지는 상상을 지속한다. 얼마 후 그는 맥도날드 형제에게 서레스토랑을 인수하고 맥도날드를 세계적 체인으로 키우는 일에 매진한다.
로컬 넘어 전국구의 상위 범주로 확장
2022년 1월, 레이 크록처럼 필자도 샌버너디노의 맥도날드를 방문했다. 1호점을 간다고 해서 맥도날드 형제와 레이 크록이 기업을 키운 비결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3년 간의 미국 근무를 마칠 때까지도 마땅한 갈피를 잡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오고 1년 동안 이런저런 자료와 영상을 찾으며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뉴욕대학에서 혁신전략을 연구하는 멜리사 실링 교수는 2017년 ‘전략과학(Strategy Science)’ 저널에 짧은 논문을 발표한다. 제목은 ‘비전을 품은 전략가의 인지적 기초(The Cognitive Foundations of Visionary Strategy)’다. 이 논문에서 실링은 세계적 회사를 키운 인물들의 뛰어난 자질 중 하나가 바로 ‘추상화(abstraction)’하는 능력이었다고 분석한다.
실링은 자신의 분석을 시작하며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마이클 포스너의 추상화에 대한 정의부터 인용한다. 포스너가 1970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심리학적으로 추상화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추상화는 어떤 경험의 특정한 부분이나 측면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대상 현상 체험의 특정한 요소를 다른 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행위다.
둘째로 추상화는 하나의 자극을 보다 넓고 포괄적인 상위 범주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이는 비전을 품은 전략가의 경우 시장에서 중요한 차원을 식별했을 때 해당 차원이 포함된 상위의 더욱 커다란 패턴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뜻이다.
맥도날드 사례에서 추상화의 두가지 정의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우선 맥도날드 형제는 초창기 25가지나 되는 메뉴에서 세 카테고리를 발견했다. 스무개가 넘는 초기 맥도날드의 메뉴는 버거 감자튀김 음료로 좁혀졌다. 형제는 고객의 행동에 기초해 특정 음식을 다른 음식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추리는 작업에 집중했다. 첫번째 추상화다.
맥도날드 형제의 배턴을 레이 크록이 이어받았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파운더(Founder)’는 맥도날드의 성장을 다룬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송곳 같은 대사는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형제를 향해 던지는 일갈이다. “나는 전국구예요. 당신들은 그저 로컬이고요(I am national. You’re just local).” 세계적 맥도날드를 만든 레이 크록은 형제가 엄두도 내지 못한 규모의 상위 가치를 찾으려 했다. 두번째 추상화다.
일상의 삶에도 추상화가 필요하다
필자도 한국에 오고 나서 일과 삶을 추상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미국에서 필수였던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선택이 첫번째 추상화였다. 하릴없이 출퇴근할 때 버스를 타야 하고 별수 없이 자주 걷는다. 가끔 새벽에 깨면 24시간 여는 맥도날드에 걸어가서 드립커피를 마시고 오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이러한 행위의 상위가치는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친환경 자동차를 구입한다. 하지만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보다 큰 차원에서 지구를 위한 삶의 방식이다. ‘생각은 지구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인식이 세계인으로서 현재진행 중인 필자의 두번째 추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