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석 칼럼

더 빨라진 인공지능 시대, 복잡함 대신 상상력을

2025-02-18 13:00:03 게재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시찰하면서 새로운 인공지능(AI)의 세상은 전기가 없이는 불가능함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데이터센터는 그것을 사용하는 목적에 있어서는 최첨단 반도체를 활용한 컴퓨팅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있는 새로운 인류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CES 등 세계적인 전시회에 가면 소위 휴머노이드 로봇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로봇은 이제는 로봇이라는 단어보다 ‘진화한 인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이러한 ‘진화한 인간’을 만들어 내고 학습시키는 에덴동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가 필수적입니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컴퓨터는 같은 검색을 수행한다고 전제하면 일반 검색장치보다 30배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데이터센터를 ‘전기 먹는 하마’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데이터센터 본래의 목적인 컴퓨팅과 검색기능에도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모든 장치에서 발생하는 열을 냉각하기 위한 전기량도 그에 못지않게 엄청납니다. 현재 데이터센터 사용 전력의 약 50%가 서버 냉각에만 사용될 정도입니다.

더욱이 단 한순간도 전기의 끊김이 없어야 하기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기 설비는 여타의 생산설비에서 필요로 하는 전기설비보다 몇 배가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전기혁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기 관련 모든 기기를 생산하는 우리 회사로서는 무궁무진한 사업 기회가 보물창고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AI시대, 혁신보다는 빠른 확산이 핵심

“미국을 또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장담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을 선도하면서 부푼 희망으로 밝은 미래를 꿈꾸던 많은 미국인에게 들려온 중국의 새로운 인공지능 ‘딥시크’ 소식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주도하고 독점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기술 수출금지까지 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이 새로운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미국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그리고 성능이 낮은 반도체를 이용해서 미국이 만든 챗GPT와 동일 수준으로 만든 것입니다.

중국의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가진 것인지 기술의 독립성은 문제가 없는지 등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출시된 ‘딥시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그것도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임은 분명합니다.

‘딥시크’ 출현을 바라보는 미국 현지의 체감도는 한국에서의 느낌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 1월 27일 월요일 한국의 주식시장은 휴장이었지만 미국의 주식 시장은 소위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이라고 불릴 만큼 폭락하는 장세를 보여줬습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CEO인 울트만도 딥시크가 카피한 기술일 가능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현재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혁신과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경쟁자로 나타남으로써 이 기술이 우리에게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애플이 처음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한국의 삼성전자가 경쟁자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스마트폰의 확산속도는 지금보다 늦어졌을 것입니다. 기술의 혁신과 확산이 함께 해야만 그 기술은 보편성을 가지고 시장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혁신보다 빠른 확산이 핵심입니다.

새로운 기회 활용하면 성장동력 찾을 수도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기술을 활용하고 확산 제조하는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우리로서도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는 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중관계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아직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새로운 판이 생기고 우리가 그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선진국과 개도국의 틈새에 낀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해 봅니다.

관세를 무기로 삼은 미국의 보호무역 파도가 세계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가 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확실하게 시작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고 국민경제와 삶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의외의 상황에서 우리에게 큰 기회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훌륭한 경제인은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함 대신 상상력을 선택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조 석 HD현대일렉트릭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