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추경예산 편성, 신속하되 절도있게
불법계엄 사태로 인한 경제침체 위기가 가중되는 가운데 추가경정예산으로 극복해보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 위주로 제기되다가 이제는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도 필요성을 인정한다.
정부도 완강한 반대 입장에서 돌아섰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답변을 통해 “기존 예산을 빨리 신속히 집행하는 게 일단은 우선”이라면서도 “추경 논의도 빨리하는 게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주변여건도 재촉한다. 미국의 트럼프2기 정부 출범 이후 보호주의 정책이 쏟아지고, 딥시크 등장으로 인공지능 개발지원을 강화할 필요성이 선명하게 부각됐다. 이제 그 누구도 노골적으로 추경예산을 거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당장 아쉽고 절실한 분야로 재정물길 흘러가게 해야
이에 민주당은 지난 13일 자체적인 추경예산안을 내놓았다. 35조원 규모의 예산안이다. 여기에는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을 위한 13조원의 예산안도 담겼다. 지난달 3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정부·여당의 추경 편성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민주당이 애정하는 민생회복지원금은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거 과정에서도 선거공약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렇지만 윤석열정부는 물론이고 일반 유권자들로부터도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하고도 흐지부지됐다. 그래도 민주당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서는 민주당 당내에서도 비판과 반대 의견이 나온다.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냉담하다.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코로나19 같은 재난사태가 일어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될 때에나 쓸 수 있는 극약처방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같은 포퓰리즘이 반복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고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져서 민주당이 다시 집권할 경우 현금살포를 습관적으로 되풀이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더욱이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수부족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재정을 함부로 쓰는 것은 자제돼야 마땅하다. 추경예산을 짜더라도 ‘절도’있는 예산이 돼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아쉽고 절실한 부문으로 재정의 물길이 흘러가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원을 확대하거나 직업군인 등의 생활지원과 사기진작을 위한 지원을 늘리는 등 여러가지가 있다.
한국경제가 수도권 중심으로 발전해 지방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은 누구나 공감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화폐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반론도 있다. 이는 숫자만 알고 민생은 없는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자가 똑같은 100만원을 소비하더라도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에서 소비한다면 지방 사업자의 처지에서 볼 때 수도권에서 소비할 경우와 지방에서 소비할 때의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다만 지역경제 진흥을 위해 전통시장에서 쓰도록 돼 있는 온누리상품권 중심으로 지원돼야 한다는 정부 주장도 일리는 있다. 따라서 정부와 야당의 입장을 절충 또는 종합해서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면 된다.
논의만 요란하게 할 게 아니라 구체적 작업 착수하길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시기 문제다. 기존예산의 집행을 최대한 서둘러보고 그래도 불충분할 경우 추경을 편성하자는 것이 정부여당의 일관된 입장인 듯하다. 크게 잘못된 주장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왕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거의 형성된 만큼 되도록 서두르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지금 추경편성을 둘러싼 논란만 요란하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별로 없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탄핵과 조기대선 국면으로 넘어가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그렇게 되면 여당은 물론 조속한 추경편성을 주장해온 야당의 신뢰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자꾸 공연한 논란은 그만두고 구체적인 작업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최소한 편성원칙이나 방향만이라도 이번주 안에 매듭짓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대선국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모든 편성절차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