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칼럼
대통령의 날 시위 “왕들은 물러가라”
미국의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2월 셋째 월요일)인 2월 17일 보스턴 시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가 발탁한 억만장자 파트너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장관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혹한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청까지 행진을 하며 반 트럼프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대통령의 날, 왕들은 안된다(No Kings on Presidents Day)”면서 두 사람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는 2월 5일 미국 전국의 수십개 도시에서 일어난 반트럼프 시위에 이어서 2주일도 못되어 이날 재개되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즉시 머스크가 정부에 새로 설립된 정부효율부 장관에 임명돼 국제개발처(USAID)를 비롯한 대외원조기관의 폐쇄와 인력감축에 앞장 섰다. 게다가 트럼프 역시 전세계의 보안관을 자처하며 연일 폭탄 발언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저항에 부닥쳤다.
사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거침없이 사익을 추구하며 가문의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최근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 프로골프 업계 중요 인물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미 프로골프협회(PGA) 최고 경영자인 제이 모나한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LIV 골프리그의 알-루마얀 회장(화상참석)의 회동으로 트럼프 가문의 골프 사업에 이익이 되는 상담을 직접 주선했다.
트럼프 가문은 LIV 골프의 사업 파트너다. LIV 골프 회장은 9250억달러(약 1335조원) 규모의 사우디 국부펀드 총재이며 트럼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설립한 사모펀드에 투자 중이다. 트럼프 소유 골프장에서도 LIV 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트럼프는 수십년 동안 미국 정계가 지켜온 이해충돌 금지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미 뉴욕타임스)
트럼프 머스크의 질주에 반대 시위도 격화
보스턴의 시위대는 “머스크는 화성에나 가라” “트럼프(왕)는 퇴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의 날에 왕들은 필요없다고 외쳤다. ‘대통령의 날’은 역대 미국 대통령을 기리는 날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전후해 2월 셋째 월요일이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시위대 중 일부는 독립전쟁 당시인 1775년대 군복 스타일의 옷을 입고 “이것은 혁명이다” “비겁자는 트럼프에 절하고 애국자는 맞선다”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미국 자체를 상징하는 엉클 샘(U.S.)의 캐릭터가 “저항하라!”고 권고하는 그림판도 등장했다. “미국의 가치관은 극소수의 부호들이나 그들의 금권 정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위는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워싱턴 시내와 플로리다주의 올랜도, 시애틀에서도 트럼프와 그의 금권정치 지지자들의 반민주적 불법적 행동에 항의했다. 워싱턴 D.C.의 시위대 수백명도 “머스크를 쫓아내고 트럼프를 퇴위 시키자!”는 구호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이번 시위에는 그동안 트럼프의 수많은 감원 행정명령에 해고된 연방 공무원들, 흑인과 소수자 등 민주국가 미국정부 구성원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다가 실직한 다수가 참여했다.
트럼프가 가자지구를 점령, 골칫거리 주민들을 추방하고 리조트로 개발하겠다든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당장에 끝낸다는 등 기발하고도 황당한 (그리고 무례한) 보안관 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 내에선 이미 국민 절반의 지지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폭주하는 트럼프와 머스크를 멈추는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어서 전국에서 트럼프 행정명령에 대한 줄소송과 법원의 취소명령의 급제동 소리도 요란하다.
문제는 한국이다. 방위비 인상을 벼르고 있는 트럼프의 새 정부와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진행중인 한국정부는 아직 상견례용 정상회담조차 못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정부의 고위 각료들과는 늘 정반대 입장이지만 그들이 “잘못”으로 규정했다고 해서 윤 대통령의 군사계엄 선포를 용납할 가능성은 없다. 한국이 거액 방위비를 떠안는 쪽을 원하지만 정치파탄으로 무너지는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관세를 줄여줄 사람도 아니다. 게다가 북한 김정은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쪽이어서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은행 터는 건 강도의 고유권한?
매일 계속되는 탄핵 관련 보도와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통치행위”라며 국회난입을 옹호하는 궤변, 헌법재판소까지 부숴버리자는 철판들을 뉴스에서 접하면서 국민들의 짜증도 한계점에 이르렀다. 필자는 헌재 재판이 열릴 때마다 안국동 일대의 교통체증으로 또 한번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온나라가 격분해 있는 와중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수에 비친 달빛 그림자”같은 말로 자신의 계엄 선포를 묘사하는 대통령을 보는 것도 괴롭다. “은행을 터는 건 강도 고유의 권한” 같은 네티즌의 댓글도 그런 심정에서 나온 것일 게다.
2시간짜리 계엄이 어디 있느냐고? 2시간 계엄은 수많은 2시간짜리 살인을 낳을 수도 있었다. 이를 막은 것은 오직 국회의 신속한 계엄해제 결의였다. 대통령은 사과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