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친위쿠데타 장벽에 멈춰 선 내란수사
윤석열 대통령 탄핵재판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윤석열측의 추가신문 요청을 받아들여 20일 10차 변론 절차를 거친 뒤 3월 중 최종 결정을 낼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탄핵재판 내내 직접 출석해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반론권 보장’이 이리 과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뻔한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았다. 극렬지지자 선동을 노린 억지주장에 분통이 터지면서도 민주주의에 따른 합법절차를 지켜 ‘국민공감대’를 넓혀야 한다는 차원에서 분노를 꾹꾹 눌러가며 보낸 인고의 시간들이다.
헌재의 ‘과분한 반론권 보장’ 답답하지만 백일하에 드러난 ‘거짓말대잔치’
그나마 헌재의 탄핵재판은 속도를 내는 편이다. 그 밖의 내란심판 수사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무엇보다 내란의 전모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공소장에 적시된 윤석열과 수하들의 내란행위 수사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비선실세로 내란기획을 디자인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압수된 수첩에 적힌 ‘비상계엄실행계획’이나 계엄에 동원된 군 사령관과 부하장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친위쿠데타는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돼 왔음이 명백하다.
그런데도 윤석열 주변 권력기관들이 총망라된 쿠데타에 응당 연루·개입됐을 게 뻔한 인물이나 기관들이 공소장에 빠져 있다. 우선 김건희 여사의 역할이 전혀 없다. 총선개입 등 온갖 국정에 관여해온 그가 내란추진계획을 몰랐다거나 추진과정에 손 놓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계엄선포 전날과 당일 조태용 국정원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단초도 드러났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밝히려고만 들면 당장 알 수 있을 터이다.
윤석열이 누구를 만나는지 하찮은 술자리까지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꿰고 있을 경호처와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최측근들도 존재감이 지워진 상태다.
윤석열이 건곤일척 승부를 걸면서 ‘친위돌격대’로 가장 믿고 의지해온 검찰조직을 빼놓았을 리 없다. 선관위를 점거한 방첩사 여인형 사령관과 1처장의 지시사항으로 언론에도 보도된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이 올 거다. 중요한 임무는 검찰과 국정원에서 할 거니까 그들을 지원하라”는 내용이 공소장에는 “국정원 수사기관 등 민간전문분석팀이 올 건데”로 슬그머니 바뀌면서 ‘검찰’이란 단어가 빠졌다. 검찰이 김성훈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을 한사코 반려한 것도 검찰연루 의혹을 짙게 하는 대목이다.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 후 ‘2차계엄’을 시도한 정황이 뚜렷한데도 이에 대한 수사 역시 진척되지 않고 있다. 국민저항이 심각해지면 동원됐을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 등 수도권 소재 군 부대 지휘부에 대한 수사도 멈춰 있다.
무엇보다 노상원 수첩에 적힌 ‘끔찍한 실행계획’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계엄을 앞두고 노상원이 김용현 국방장관과 수십번 만났다는데, 이 계획들이 윤석열 김용현과 상의없이 혼자만의 망상으로 작성된 것이었겠는가.
계획에 따라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 국 등 정치인들과 판사 언론인 등 14명(또는 16명) 체포조 가동은 실제 진행됐다. 이들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제보로 초기에 이름이 알려졌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유시민, 심지어 축구인 차범근 이름까지 포함된 ‘수거대상’ 명단이 뒤늦게야 밝혀진 배경은 의아스럽다. 1차 ‘수거대상’만으로도 그 규모나 대상인물이 상상을 초월한다. 갖가지 ‘수거방법’의 잔인무도함도 끔찍하다.
베일에 숨겨진 내란 전모 밝히고 ‘근본개혁’ 기회 삼아야
이렇듯 엄정한 수사로 당장 밝혀내야 할 것들이 산적한데도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내란특검은 번번이 길이 가로막혀 있다. 친위쿠데타의 장벽이다. 내란공범과 내란동조 내지 옹호세력들이 여전히 권력을 틀어쥐고 특권카르텔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드러내놓고 내란을 옹호하며 극렬지지층 결집에 앞장선다. 극우친일로 엮인 내각의 장관이나 ‘반인권적 국가인권위원회’ 등 편향된 국가기관들은 지지층을 선동해 내란심판 뒤집기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엄실패 초기에 여세를 몰아 단호하게 뿌리 뽑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이제 기댈 것은 정권을 온전히 교체해 새 정권하에서 내란전모를 낱낱이 밝히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험난하고 갑갑한 과정을 지치지 말고 또 견뎌야 한다. 탄핵과정의 답답함이 우리사회 온갖 모순이 극적으로 드러나 기득권카르텔의 뻔뻔한 민낯을 실감케 함으로써 ‘근본개혁’의 계기를 제공했다면 이 또한 ‘역사의 대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