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세계대전으로 확산된 관세전쟁, 우리는

2025-02-20 13:00:03 게재

지난 4일 중국을 상대로 시작된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전세계로 확산됐다. 관세전쟁이 개시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각국을 상대로 연이어 핵폭탄급 관세정책을 내놓았다. 그는 지난 10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오는 3월 12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며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에 대해서도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13일에는 미국의 모든 교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를 상대국과 같은 수준으로 높이는 이른바 ‘상호관세’를 오는 4월 초부터 부과한다는 각서에 서명했다. 이어 14일에는 수입차 관세율을 4월 2일쯤 내놓겠다고 밝힌 뒤 세율이 25% 정도 될 것이라고 18일 공개했다. 또한 반도체 의약품도 25% 이상이 부과될 것이라면서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관세가 없기 때문에 미국에 들어올 시간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트럼프행정부는 특히 상호관세를 부과할 때 일반적 상호관세와는 달리 각국 정부의 보조금, 자국 화폐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환율정책, 미국 기업의 사업을 막는 규제와 불공정 관행 등 비관세 요소들을 모두 계산에 넣어 나라별 맞춤형으로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특정 품목에 수량 제한(쿼터)을 두거나, 위생검역 절차를 까다롭게 적용해 수입을 막는 조치는 물론이고 부가가치세와 같은 세금까지도 불공정 사례로 보고 있다.

한국 콕 찍어 미국을 이용한 국가라고 지목

이에 따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대미 수출입 품목에 대해 대부분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한국은 날벼락을 맞게 됐다. 더구나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중국 같은 경쟁자는 물론이고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같은 동맹국들도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한국을 콕 찍어 지목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후보자도 최근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기업 독과점 규제 움직임을 구글·애플·메타 등 미국 기업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앞으로 각국에 관세 협상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을 거쳐 국가별로 차등화한 관세율을 적용하겠다는 얘기다. 관세를 당장 부과하지 않고 협상 여지를 남겼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탄핵정국으로 인해 국가 리더십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트럼프가 잇달아 쏟아내고 있는 관세정책에서 부과 대상 국가나 규모를 예상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미국의 속내를 읽고 선제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자초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는 개인 외교와 톱다운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의 언급 여부가 아주 중요하다. 각국 정상들도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호주는 정상 간 통화를 통해 철강·알루미늄 관세예외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우리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조차 못하는 등 오는 4월 초까지 이어질 협상에서 소외될 처지에 놓여있다.

한국은 세계 8위의 대미 무역 흑자국이다. 또한 미 재무부가 지정한 환율관찰대상국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많은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자동차 배출 관련 인증절차 등 각종 규제는 물론이고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받기로 한 보조금도 재협상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과 한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 요구도 커질 것이다.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통상공세 방어한 경험 살려야

하지만 우리는 트럼프 1기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미국의 통상 공세를 방어해낸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의 미국 투자를 활발히 해 트럼프 1기 출범 이후 미국 내에 83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선 반도체 방산 등 분야에서 ‘윈윈’ 거래를 할 수 있는 산업 역량도 갖추고 있다.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산 에너지와 옥수수 수입 등을 크게 늘려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비관세장벽 문제는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해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정부는 최근 무역전쟁에 선제 대응해 ‘범부처 비상수출 대책’을 내놓았다. 물론 이러한 대책도 긴요하지만 지금은 미국과의 협상에 더 매진해야 할 때라고 본다. 탄핵정국으로 정상 외교가 불가능한 상황이나 정부와 기업이 다양한 채널을 동원한다면 트럼프 1기 때처럼 협상을 통해 미국의 거센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