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16
도초도 팽나무 십리길
세상에 둘도 없는 팽나무 가로수길
팽나무 노거수는 그 신령함 때문에 한 그루만 있어도 신목으로 모셔진다. 그런데 전남 신안의 섬 도초도에는 무려 716그루나 되는 노거수 팽나무들이 가로수길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신들의 정원이다.
이 팽나무들은 모두 이민을 왔다.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던 나무들을 신안군에서 모셔와 도초도 초입부터 월포천 수로를 따라 수국공원까지 가로수길을 만들었고 마침내 도초도를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수령 70~100년씩 된 고령의 팽나무들은 2020년 3월부터 전국 각지에서 왔다. 전남은 물론 충청도 경상도 등 출신지도 다양하다.
팽나무들은 저마다 태어나 자란 고향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고향을 떠나왔지만 고향을 기억해 주자는 아름다운 의미다.
백섬백길 44코스는 도초도 팽나무 십리길이다. 도초도항을 출발해 팽나무 가로수길을 지나 자산어보 촬영장까지 이어지는 4㎞ 길. 이 팽나무 길에는 팽나무 외에도 애기동백을 비롯한 4종 1004주의 나무와 수국 2십만주, 애기범부채 외 6종 초본식물 3십만주 등 총 50만1720주의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다.
신안군의 노력이 빛을 발해 이 길은 순식간에 한해 수십만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팽나무 가로수길이 이어지는 월포천 주변은 드넓은 들판이다. 섬이 아니라 내륙의 평야지대 같다. 이 들판은 신안군 내에서 가장 넓은 고란평야다. 섬이지만 옛날부터 천석꾼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너른 들판.
이 들판에는 일제강점기 항일 농민항쟁인 도초도 소작쟁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도초도 소작쟁의는 1925년부터 1926년 사이에 일어났는데 동아일보가 20번 이상 보도했을 정도로 전국적인 사건이었다.
일본인 지주들과 함께 소작쟁의를 촉발시킨 중심인물은 문재철이었다. 문재철은 일제의 토지 수탈에 편승해 약탈적으로 토지를 늘린 전형적인 식민성 지주였다. 1920년대 당시 암태도, 도초도 등의 섬 지역과 전라남북도 등지에 500만평을 소유한 대지주였다.
1910년대에는 지세와 제반 경비를 공동부담하고 생산량을 반반씩 나누었는데 1920년대 들어 무려 7~ 8할의 소작료를 징수해 갔다. 약탈적 소작료 징수를 참을 수 없었던 도초도 농민들은 소작인회를 결성해 1925년 가을 소작쟁의를 개시했다.
시위 과정에서 도초도 주민들은 돌을 던지거나 순사를 바닷속으로 밀어 넣었고, 일본인 순사부장의 뺨을 때리는 등 일제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도초도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놀란 일제는 무장 경찰 120여명을 도초도로 들여보내 소작인회 지도자 20여명을 체포해갔다.
주민들은 소작료 불납운동으로 맞섰다. 도초도 주민 200여명은 목포경찰서 앞에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여명은 감옥살이를 했지만 결국 “40여명의 지주로부터 4할제에 대한 승인을 얻어냈다.”
도초도 소작쟁의 기간 동안에는 전국 각지의 사회단체가 대표자를 파견해 진상을 조사하거나 경성은 물론 황해도와 강원도 등 전국 각지에서 후원금을 보내며 연대했다. 도초도 소작쟁의는 인근 섬 암태도 소작쟁의와 함께 일제강점기 대표적 항일농민운동이었다. 도초도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항일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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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