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에너지안보환경 변화와 전력수급
우리나라는 종전과는 다른 차원의 에너지안보환경에 직면해 있다. 첫째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전력수요의 가속적 증가가 예상되며, 둘째 기후변화가 눈에 띄게 악화하면서 탄소감축 필요성이 더욱 긴박해졌고, 셋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석연료 회귀정책으로 시장에 교란이 생기고 있다.
AI는 산업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챗GPT 같은 생성형 AI와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전력 사용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AI 연산처리를 위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국가 전체 소비전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AI가 정밀해지고 그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처리가 필요해지고 따라서 전력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4차산업혁명에 깊숙이 들어선 한국도 전력을 더욱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데이터센터는 산업의 중요한 엔진으로 자리매김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전력공급이 절실하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만약 전력공급이 불안정하거나 비용이 높아질 경우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뒤처질 것이다.
트럼프정부의 화석회귀가 불러올 파장
기후변화가 예상외로 빨라지면서 탄소감축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새해 벽두 LA를 덮친 산불은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산불로 기록되고 있다. 기후전문가들은 우기에 발생한 LA 산불을 기후재앙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2024년 지구평균 기온이 역사상 가장 높았다. 세계 곳곳에서 홍수 태풍 한발 산불 발생의 규모와 빈도가 확대되고 있다. 커피 밀 등 기후에 민감한 농작물의 흉작으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식량위기를 경고한다.
파리협정이 채택된지 10년이 흘렀지만 탄소감축은 더디기만 하다. 우크라이나전쟁이 3년간 지속되면서 EU 등 유럽의 기후리더십이 약화되고 탄소감축 대오가 흐트러졌다. 이런 추세로 지구가 뜨거워진다면 21세기 인류공동체가 붕괴되는 비상상황을 맞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에너지 정책이 180도 방향을 틀었다. 트럼프는 파리협정을 탈퇴했고 이 협정을 토대로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 중심으로 짜놓은 민주당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을 폐기했다. 트럼프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를 외치며 알래스카 등 자연보호지역에서 석유와 가스 시추해서 화석연료 공급을 늘리자고 독려한다.
트럼프의 화석연료 회귀정책은 두가지 큰 파장을 불러오게 된다. 우선 파리협정체제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며 국제사회의 탄소감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에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이자 역사적 누적 배출 1위로 탄소감축의 도덕적 책임이 큼에도 이를 걷어참으로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 또 미국의 산유량이 증가하면 일시적으로 에너지시장에 안정을 줄 수도 있지만 미국과 거래하는 국가의 탄소감축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는 지난 2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행정공백이 심각한 상태에서도 국가의 에너지 로드맵을 확정했다는 것은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기본계획은 2038년까지 예상 전력수요량과 공급계획을 담고 있다. 정부는 2038년 최대전력수요량을 129.3기가와트(GW)로 잡고 있다. 작년 최대수요량(8월 12일, 102.3기가와트) 대비 26.7% 늘어나는 것으로 짰다.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서 논란의 초점은 무탄소 전원의 비중이었다. 이번에 확정된 11차 기본계획에선 2023년 무탄소 비중이 39.1%였던 것을 2038년에는 70.7%로 높인다. 무탄소 전원은 원자력 풍력 태양광 수력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을 말한다. 2038년 무탄소 전원비중은 원자력이 35%, 재생에너지 29.1%이다.
전력공급 안정성과 경제성 고려한 계획
기본계획의 문맥으로 볼 때 전력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함께 고려한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원자력 활용 확대는 예상대로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원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은 합리적 선택이다. 소형원자력(SMR) 건설을 기본계획에 포함시킨 것도 바람직하다. 한국이 원자력선진국답게 기술투자로 좋은 SMR 모델을 만들어 국제경쟁력을 갖췄으면 싶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생산해도 한전이 사주지 않은 간헐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마트그리드와 계통문제, 에너지 저장 기술(ESS)의 발전이 상당히 더뎌 보이는 데 이에 대한 개선책도 요구된다. 미국이 화석연료 회귀정책으로 국내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가 약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단순한 계획 수립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