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문화예술계에 대한 트럼프의 복수와 야심

2025-02-25 13:00:12 게재

지난 수요일(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케네디센터) 이사회 구성원을 일방적으로 모두 해임했다. 여기에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최근 임명한 인물과 마이크 도닐론 민주당 정치전략가, 카린 장 피에르 전 백악관 공보비서관, 크리스 코지 민주당 전국위원회 재무위원장 등이 포함됐다.

대신 그는 부통령 JD 밴스의 아내 우샤 밴스와 수지 와일즈 백악관 비서실장 등 자신의 정치적 동맹, 기부자, 그들의 아내를 구성원으로 임명했다. 이사회 구성을 여야 동수로 했던 관행도 깼다.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트럼프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이 모든 파격적인 인사는 센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현직 대통령이 케네디센터에서 전임 이사를 해임하고 자신이 신임 의장을 맡은 첫 사례이기도 하다.

케네디센터는 케네디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1971년 설립된 유서 깊은 공연장이다. 예술인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말하자면 국립문화센터로서 미국의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대표하는 중요한 곳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과 러시아 발레 무용수들이 함께 공연해 성공적인 외교행사를 개최한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이 센터는 민관 동반관계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통령이 모든 이사회 구성원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사회 구성원들은 센터의 연방기금관리를 감독하고 매년 케네디센터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센터에서 개최하는 개별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영향력을 미치지 않지만 센터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주춧돌 역할을 해 온 셈이다.

이사진 해임 소식이 알려진 이후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예술과 문화의 황금기를 향한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이사장을 포함한 여러 이사진을 해임함으로써 케네디센터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계획”이라는 글을 올렸다.

케네디센터를 둘러싼 이러한 격변의 여파로 TV 및 영화 제작자 숀다 라임스부터 오페라 스타 르네 플레밍에 이르기까지 여러 예술가가 이 기관과의 관계를 끊었다. 특히 무용가들은 기관의 미래에 우려를 표명하며 시위를 벌였다.

집권 1기 때부터 문화예술계와 갈등관계

사실 공연예술가들은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직후부터 그의 비판대열에 앞장섰다. 트럼프가 취임하기도 전인 2016년 대선 직후 당시 부통령 당선자 마이크 펜스는 ‘해밀턴’ 뮤지컬 공연에 참석했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출연진들은 펜스 당선인에게 직접 “피부색 신념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보호하고 옹호하며 우리의 권리를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분노한 트럼프는 해밀턴 공연 보이콧을 촉구했다.

2017년 6월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 공연에서는 암살당하는 줄리어스 시저를 트럼프로 설정해 공연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이자 음모론자 중 하나인 로라 루머는 공연 도중 무대로 달려가 “우파에 대한 정치적 폭력을 중단하라! 용납할 수 없다!”고 외치는 촌극을 벌였다. ‘1984년’ 공연에서는 트럼프가 파시즘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며 잔혹한 고문 장면을 삽입해 관객들이 기절하고 구토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트럼프와 예술계의 관계는 오랜 기간 소원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설립한 초당파적 자문기구 ‘대통령 예술 및 인문학 위원회’ 위원 17명 전원이 백인민족주의자들의 시위 이후 트럼프의 편향적 수사를 문제삼아 사임했다. 트럼프는 이후 위원회를 해산해버렸다.

또한 케네디센터 명예 수상자 5명 중 3명이 트럼프의 리더십에 반대해 갈라 행사 전에 시행되던 백악관 리셉션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자, 트럼프는 아예 리셉션을 취소해 버렸다. 그는 1978년 이 행사가 시작된 이래 임기 중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었다.

예술가와 예술 후원자에게 수여하는 국가 예술훈장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첫 임기 동안 군인 음악가를 포함해 단 9개의 훈장을 수여했을 뿐이다. 오바마가 8년 동안 76개, 바이든이 4년 임기 동안 33개의 훈장을 수여한 것과 비교된다.

외면에서 장악으로 적극적 움직임

그랬던 트럼프가 이제 문화기관 장악을 시작으로 예술계에서조차 영향력을 넓히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다양한 문화기관에 적극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취임 후 몇시간 만에 그는 2022년에 부활했던 ‘대통령 예술 및 인문학 위원회’를 폐지해 그에게 항의하는 대량 사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버렸다.

이후 정부 지원 문화 프로젝트에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9일 만에 그는 첫번째 임기 때의 아이디어였던 국립 ‘미국 영웅의 정원’ 계획을 재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과학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정치 비즈니스 분야의 인물과 미국 건국자 중 일부를 포함해 동상으로 세울 244명의 수상자를 선정한 바 있다.

게다가 독립선언서 서명 250주년인 2026년 7월 4일을 위한 계획에 자신의 비전을 반영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태스크포스 250’이라는 새로운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의회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행사 계획을 세부적으로 지원하는 담당자 역할까지 맡고 있다.

지난 선거 운동 기간 트럼프는 2025년 메모리얼 데이부터 2026년 7월 4일까지 1년 이상 100주년 기념행사가 지속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아이오와주의 여름 박람회 전통에 경의를 표하며 각 주가 모두 참여하는 ‘위대한 미국 주 박람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덧붙여 박람회와 더불어 패트리어트 게임이라는 새로운 전국 고등학교 스포츠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공약했다.

예술에 대한 트럼프의 새로운 관심은 미국 전 영역에 폭넓은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일종의 출발신호를 의미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전국의 예술 및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두가지 주요 원천인 국립 예술기금과 국립 인문학기금을 확보하려고 반복적으로 시도했다. 그러나 의회는 이를 무산시켰다. 임기 말에는 각 기관에 대한 연간 지원금이 그나마 임기 초보다 약간 증가해 1억6700만달러가 넘었다. 이번 임기가 시작한 직후 트럼프는 예술과 인문학 기부금의 두 위원장에게 ‘태스크포스 250’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그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국가의 권력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극장 중 하나를 쉽게 장악했고, 그 유산을 이용해 자신을 외면했던 예술계를 조롱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금 트럼프정부가 반(反)성소수자, 반(反)성전환자 행정명령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원하는 문화와 미국의 정체성에 대한 비전을 향해 공격적인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가장 큰 수출품 미국 문화도 변질 가능성

케네디센터는 1971년 개관한 이래로 어떤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관련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센터에서 개최되었던 ‘드래그쇼’를 비난하며 이달 예정됐던 성소수자 합창단의 공연까지 취소하게 했다. 이제 복수의 칼날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공격적이다.

케네디센터와 같은 예술문화기관이나 국립문서보관소 등의 또 다른 관련 기관들을 장악하거나 해체하려는 시도가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더라도 미국 예술계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예술 영화 TV 음악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는 미국의 가장 큰 수출품목 중 하나다. 이 매체의 힘이 트럼프행정부의 손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세계 각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케네디센터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라고 외친 트럼프의 선언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위대함이 될지 지켜보아야 할 시점이다.

김찬송 위스콘신대 정치학, 미국 선거·여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