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독일 톺아보기

독일 총선의 시사점 - 자강과 국제경쟁력 갖춘 리더의 부상

2025-02-26 13:00:04 게재

우경화 바람이 거세다. 지난 23일 치러진 독일 총선은 야당인 중도우파 기민당(CDU/CSU: 28.5%, +4.4%) 승리, 극우인 독일대안당(AfD 20.8%, +10.4%) 압도적 부상, 좌파(당)의 선전(8.7%, +3.8%), 그리고 집권당인 사민당(SPD 16.4%, -9.3%)과 녹색당 패배(11.6%, -3.1%), 자민당(FDP, 4.3%, -7.1%) 의회 퇴출로 나타났다. 유권자들은 집권당인 신호등연정(사민당+녹색당+자민당) 정당들을 심판했고 야권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나쁜 경제와 불안한 외교안보, 난민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집권당에 대한 냉혹한 평가였다.

이번 독일 총선에서는 2차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선거 이슈와 어젠다가 부상했다. 먼저 경제위기와 혼돈의 국제질서에서 ‘리더(Fuhrer 퓌러)’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이는 과거 히틀러를 부르던 단어였다. 히틀러처럼 경제위기를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금기어가 깨진 것이다. 그만큼 독일 경제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또 총리 후보들 간 TV토론이 가장 많이 진행되었다. 큰 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 ‘양자 TV 토론’, 총리후보를 낸 모든 다섯 정당들 총리 후보 간 ‘4자 TV토론’, ‘5자 TV토론’까지 진행되었다. 방송이 새 지도자를 바라는 유권자들 심리에 다가선 것이다. 메르켈 전 총리의 라이벌로서 정계를 떠났다가 다시 복귀한 기민당 프리드리히 메르츠(70세)가 총리에 등극하면서 트럼프에 맞설 유럽 새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동맹 타령하지 않고 자강의 길 선택

독일 총선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건 지금까지 독일 및 유럽의 국방외교를 지탱했던 ‘대서양동맹’이 흔들리면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 독일 스스로 국방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면서 최고 어젠다로 부상했다. 이미 녹색당 출신의 아날레아 베어보크 외교부장관은 “미국에 의존한 국방 기생충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총선 최대 승자인 AfD의 알리스 바이델 총리 후보는 “미군철수” “유럽연합(EU) 탈퇴”를 내걸고 두번째로 많은 유권자 표를 모았다. 메르츠 총리 후보는 승리연설에서 “내 우선순위는 유럽 강화와 더불어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독일 보수가 한국 보수와 다른 점은 성조기를 흔들거나 동맹타령을 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독일 총선의 최대 이슈는 역시 경제였다. 독일 경제가 세번째 ‘유럽병자’로 조롱받기 시작하면서다. 독일이 유럽병자로 조롱받은 것은 ‘라인강 기적’ 이후 1970년 후반 오일위기 때가 첫번째였고, 1990년대 평화통일 이후가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근검절약과 신기술력으로, 두번째는 구조조정과 복지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두번의 위기 모두 정권교체가 있었다. 사민당에서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로, 다시 기민당에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로 정권교체가 있었기에 위기 극복이 가능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강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치를 잘못하면 유권자 심판으로 정권이 교체된다.

후자의 경우 유명한 ‘어젠다 2010’으로 자신의 지지층 복지에 메스를 댔다. 그 결과 슈뢰더는 총리직을 잃었지만 독일은 다시 유럽 경제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필자에게 “내 직위보다 나라와 국민이 우선”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의 후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경제부흥이라는 과실을 따먹었다.

코로나 위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저가공세로 가장 센 직격탄을 맞은 나라가 독일이다. 삼중고에 시달린 것이다. 메르켈 전 총리가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침공을 용인했기 때문에 독일은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울라프 숄츠 정부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비를 지원했고 약 100만명의 난민을 받았다. 또 값싼 러시아 가스공급이 중단됨으로서 에너지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지난 2년 동안 산업선진국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면서 최대 3% 경제성장으로 반등했지만 독일은 오히려 마이너스 1%로 추락했다. 따라서 이번 독일 총선은 2차세계대전 이후 전략 및 정책 전반에 대해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민당과 사민당 ‘코끼리 대연정’ 가능성

향후 독일 연정은 어떻게 꾸려지고, 어떤 정책을 펴게 될 것인가? 독일은 다당제 구조이기 때문에 연정이 불가피하다. 제1당인 기민당과 사민당 연정 혹은 녹색당과의 연정이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민당과 사민당과 ‘코끼리 대연정’(거대 정당의 대연정) 성사를 전망한다. 우리에 빗대 말하자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대연정이다.

역사적인 경험에 기반해 연정 협상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대연정은 과거 4차례 성사된 적이 있다. 또 국민들이 급변하는 국제상황과 경제위기로 빨리 새 정부가 들어서길 바라기 때문이다. 메르츠 총리 후보가 말해온 “극우(AfD)에 대한 ‘방화벽’을 허물지 않겠다”는 공약처럼 기민당과 2당인 AfD 연정은 성사되기 어렵다. 메르츠는 또 “부활절(4월 20일)까지 연정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차기 독일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4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그동안 무임승차해온 외교국방 분야다. 독일은 미국과 나토(NATO)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또는 유럽동맹국과 새 국방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먼저 국방비 5%와 더불어 특별예산을 편성해 군비강화에 나선다. 또 이미 핵을 보유한 프랑스와 영국이 함께 ‘유럽 핵우산’을 만든다는 전략도 세웠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이미 유럽군 창설을 외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제전략으로 유럽이 러시아를 맡고,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에 집중한다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나아가 국제분쟁 시대 방위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심지어 독일 자동차 회사가 방산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독일 자동차회사는 내연기관에서는 최고를 자랑했지만 전기차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2차세계대전 이전의 산업 재편이 예상된다. BMW 등 자동차회사들은 2차세계대전 이전 항공기와 탱크 등 군수장비를 생산했다.

또 에너지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원전 복귀다. 이미 기민당과 AfD가 총선에서 내건 공약이다. 난제는 사민당과의 연정 협상에 달려있다. 하지만 에너지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원전 복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소형원자로(SMR)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원전과 소형원자로 기술력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장점을 확인할 수 있다.

최대 선거이슈였던 난민문제는 더욱 엄격하게 자격을 심사하고, 테러 가능성과 문제 있는 난민들을 본국으로 추방하는 방향을 잡았다. 이미 기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루르지방’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본국으로 추방했고 다른 연방주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 수백만 난민을 받아들여 빈번한 테러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은 메르켈의 기민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기술•신산업, 특히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와 인력 및 기업 육성이다. 소프트웨어에서 세계 경쟁력을 확보한 SAP 같은 기업들을 많이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경쟁력을 갖춘 인공지능 번역의 딥플(Deepl) 등 AI기업들이 부상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성장 방점 두면서 자주국방 우선 추진

‘경제부흥’을 내건 메르츠 총리 후보는 성장에 방점을 두면서 자주국방을 우선 추진하고 국방특별기금, 법인세 감세와 투자 우대 정책을 펼 전망이다. 독일 총선이 주는 시사점은 경제대전환, 에너지전환, AI패권전쟁, 다극시대 등 글로벌 트렌드를 정확하게 파악해 이에 부응하는 ‘자강’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올인하는 리더의 부상이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