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너마저”…독일경제 활로는 있나

2025-02-27 13:00:01 게재

중국시장 독일차 판매량 급감… 다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나

포르쉐는 ‘꿈의 자동차’로 불린다. 포르쉐는 성능과 감성과 안락함을 두루 갖춘 프리미엄 스포츠카다. 다른 자동차들은 시간이 흐르면 폐차장으로 가지만, 포르쉐는 박물관으로 간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다. 포르쉐의 경쟁 대상으로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등이 꼽히기도 하지만, 포르쉐 옆에서는 세컨카로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동차 마니아들의 꿈은 포르쉐다. 포르쉐 최고의 고객은 중국의 부호들이다. 한때 포르쉐 매출의 1/3 정도가 중국에서 나올 만큼 포르쉐의 인기는 높았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포르쉐 매출이 급락하고 있다. 포르쉐의 모회사인 폭스바겐에 따르면 2024년 포르쉐의 중국 판매량은 전년도 대비 28% 줄어든 5만6887대에 그쳤다. 중국시장에서의 부진으로 포르쉐의 글로벌 판매는 3% 줄어든 31만718대에 그쳤다. 중국 소비자들이 비야디(BYD)와 샤오펑(Xpeng), 지커(ZEEKR) 등 자국산 전기차(EV)와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눈을 돌리면서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중국 자동차 시장 리더로서의 입지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 ‘포르쉐가 더 이상 중국에서 프리미엄 스포츠카가 아닌 이유(Why Porsche Is No Longer a ‘Premium’ Sports Car in China)’라는 기사를 실었다. NYT는 “중국 운전자들이 신기술을 탑재한 자국산 전기 자동차를 선호하면서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포르쉐 타이칸을 모방한 샤오미 SU7은 파워와 제동 면에서 타이칸에 필적할 뿐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주차를 돕고 운전자가 좋아하는 노래로 인사까지 할 수 있다”면서 “SU7의 가장 큰 장점은 타이칸의 절반 가격 정도에 판매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NYT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문제점을 아프게 지적한다. “수년 동안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다른 지역의 수요 부진을 메우기 위해 중국 시장에 의존했다. 국내의 보다 심각한 구조적 문제들은 간과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을 탑재한 전기 자동차 도입을 주저했다는 점이다.”

독일 자동차업계는 게으른 혁신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독일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일제히 줄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쇼크’까지 더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에서 미국산 자동차 판매가 저조한 점을 지적하며 자동차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럽연합(EU)은 미국 자동차가 팔리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며 "독일에서 포드나 쉐보레를 과연 몇 대나 볼 수 있느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자동차 산업은 독일경제의 근간이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부진하면 독일경제도 어려워진다. 독일 경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빠져나오는가 했더니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를 사용하던 독일 제조업은 경쟁력을 크게 잃었다.

독일경제, 2년째 제자리걸음

독일경제는 2022년 1.4% 성장한 이후 지난 2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독일이 다시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받는 상황이 됐다. 독일은 1970년 후반 오일위기 때 그리고 1990년대 동서독 통일에 따른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린 바 있다.

지난 23일 치러진 독일 총선의 최대 화두는 당연히 경기침체였다. 국민들은 집권 사회민주당(SPD)을 향해 경제와 이민정책 실패 등의 책임을 물었다. 사민당은 18.2%의 득표에 그치면서 3당으로 전락했다. 기독교민주연합(CDU/CSU)이 29.5%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 대안(AfD)이 20.8%의 득표율로 원내 제2당으로 도약했다.

이번 선거 결과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가 차기 총리로 선출될 전망이다.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해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과연 차기 독일정부는 어떻게 경제 위기를 극복할까? 독일기업들의 역사를 관찰해온 저널리스트 콘스탄틴 리히터는 21일 ‘위기한 처한 독일: 아무도 해법을 모른다(Germany Is in Big Trouble, and Nobody Knows What to Do About It)’라는 칼럼을 NYT에 실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은 연정 파트너였던 녹색당과 함께 녹색성장을 낙관했었다. 칼럼은 “사민당은 저탄소 기술이 산업 르네상스를 일으킬 것으로 믿었다”면서 “숄츠 총리는 독일경제가 1950~1960년대와 같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음을 상기했다.

칼럼은 이제 차기 총리 후보인 메르츠를 주목한다. 메르츠는 자신을 개혁가로 자처한다. 그는 광범위한 감세와 규제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칼럼은 메르츠가 어떻게 감세를 하고 개혁을 할 것인지에 대해 그럴듯한 답변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칼럼의 지적대로 독일이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독일은 2년째 경기 침체에 빠져 있다. 저성장과 저생산성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도 이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하다. 기나긴 침체의 위협이 현실로 닥치고 있다. 기업은 높은 에너지 가격과 과도한 관료주의,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르츠 차기 총리 후보는 숄츠 총리 못지 않은 낙관주의자다. 메르츠는 자주 “기적(Wirtschaftswunder)”을 입에 올린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25년 간 지속된 ‘라인강의 기적’이 바로 코앞에 다가올 수 있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칼럼은 ‘기적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음을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그동안 독일은 미래기술에 대한 투자를 하지 못했다. 미국으로 두뇌들이 빠져 나갔다. 자동차・화학・기계와 같은 몇몇 수출 산업에 대한 과도하게 의존했다. 독일이 새로운 기적의 시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때 독일 경제의 중추였던 철강과 석탄 산업도 이미 쇠퇴하고 있음을 칼럼은 아프게 지적한다.

변화 요구하는 독일 유권자들

“지금 가장 현실적인 두려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일 경제를 지탱해 온 자동차와 기계가 오래 전 철강과 석탄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17일 ‘유럽 최대 경제국의 침체와 변화를 요구하는 독일 유권자들(German voters demand change as Europe’s biggest economy stalls)’이라는 기사를 통해 총선 이후의 독일경제 앞날을 예측했다.

로이터는 독일경제가 제2차대전 이후 가장 긴 침체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터는 “독일경제를 면밀히 관찰하는 사람들은 이번 선거가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영국 경제연구소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수석 경제학자 프란치스카 팔마스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차기 독일정부가 주요 장기 구조개혁을 우선시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팔마스는 그러나 “정책 입안자들이 새로운 성장 사업에 집중하고, 디지털화를 촉진하고, 신생 기업을 위한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독일의 장기적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시적 안목에서 구조개혁에 집중하라는 조언이다.

문제는 돈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악화된 안보환경 보완과 노후 인프라 개선, 에너지 확보, 기후 의무 이행, 주택난 해결 등 숱한 구조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IW)는 이런 구조개혁을 해결하는 데 향후 10년 동안 6000억유로(약 902조8000억원)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구조개혁의 재원은 정부 재정이다. 현재 독일의 정부 부채는 GDP의 63%로 G7 국가 중 캐나다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독일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돈을 풀어야 한다. 그러자면 독일정부의 엄격한 재정 준칙인 ‘부채 브레이크’를 넘어서야 한다. ‘부채 브레이크’란 연간 재정적자를 GDP의 0.35%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이다. 독일 우파들은 부채 브레이크를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목소리들이 감지되고 있다. 메르츠 차기 총리 후보의 수석 예산 보좌관인 마티어스 미델버그(Mathias Middelber)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부채 브레이크를 추가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경제사연구소 소장인 니콜라우스 울프(Nikolaus Wolf)는 “지금은 독일이 투자해야 할 때”라면서 “독일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투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울프 소장은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자살행위”라고 덧붙였다.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은 우리 경제를 죽이는 짓이었다. 내란으로 안보는 흔들리고 경제는 기울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라앉는 경기를 떠받치는 추경 편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의힘은 그러나 지난해 예산 삭감에 대한 민주당의 사과와 예산안 원상 복원을 추경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 경제를 또 한번 죽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골든 타임이 지나고 있다.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