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주민소환제 청구·개표요건 손봐야
144건 추진됐지만 성사 단 2건
투표율 요건 33.3%→25% 필요
투표율 33.3%의 벽은 높았다. 불과 1.05%, 271표가 모자라 강제추행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자치단체장을 주민 손으로 끌어내리지 못했다. 주권자인 주민에게 임기가 남은 선출직 공직자를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줬지만, 허울뿐인 권한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양양군선거관리위원회는 26일 실시된 양양군수 주민소환투표 결과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는 32.25%를 기록해 주민소환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지난 21일과 22일 이틀간 진행된 사전투표에 3691명이 참여해 14.81%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이날 본투표까지 총 8038명이 참여해 32.2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양양지역 전체 유권자는 2만4925명이다.
이번 투표결과는 주민소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실제 양양군수를 포함해 그동안 추진됐던 주민소환 144건 중 133건이 무산됐다. 개표 요건을 충족한 사례는 단 11건이었고, 이 가운데 실제 주민소환이 이뤄진 경우는 2건뿐이다. 현재도 전북 완주군수를 포함해 7건의 주민소환이 추진 중이지만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정도면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인 셈이다.
주민소환제는 2004년 1월 도입 근거가 마련됐고, 2006년 4월 관련 규정이 만들어졌다. 시행은 2007년 5월부터다. 주민투표제도 주민소송제도 주민발의제도 등과 함께 주민 직접참여 확대를 목적으로 만든 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는 청구요건부터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도지사는 유권자의 10%, 시장·군수·구청장은 15%, 지방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이 있어야 청구할 수 있다. 소환 대상자를 포함해 누구나 서명 명부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소환 대상자의 보복 등을 우려해 서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도가 시행된 2007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144건의 주민소환이 추진됐지만 71건이 서명 미달로 무산됐다. 현재 추진 중인 7건도 서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나마 서명을 충족해 실제 주민소환 투표에 부쳐진 경우가 11건 있었지만 이 조차도 높은 투표율 장벽을 넘지 못했다. 개표 요건인 투표율 33.3%를 충족한 경우는 11건 중 2건 뿐이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07년 경기 하남시 시의원 2명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은 투표율이 37.6%였고, 개표 결과 압도적인 찬성으로 성사됐다.
자치단체장 소환은 한차례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동안 추진됐던 주민소환 144건 중 대상이 단체장인 경우는 이번 양양군수를 포함해 모두 69건이었다. 광역단체장은 서울시장·경남지사·인천시장·광주시장·충북지사가 소환 대상이 된 바 있다. 나머지는 시장·군수·구청장이었다. 이 가운데 투표율을 충족해 실제 투표가 이뤄진 경우가 6건 있었지만 모두 투표함조차 열어보지 못하고 끝났다.
제도개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와 학계 등에서 요건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결국 국회와 정부도 법 개정을 추진했다. 2020년 백혜련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비롯해 21대 국회에서 모두 5건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중에는 정부발의 개정안도 있었다. 그 결과 2022년 11월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들 5개 법안을 병합해 위원회 대안을 마련했지만 결국 법률 개정까지는 가지 못했다. 개정안에는 개표요건을 현 1/3에서 1/4로 완화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권자인 주민에게 선출직 공직자의 임기 중 해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주민소환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요건을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수준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