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이냐, 디지털 편의성이냐
미국 스타트업 ‘링크 플레이’가 만든 오디오 혁신 … 이제 본격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로
하남의 어느 대형매장에서 100만원대 ‘네임’ 네트워크 인티앰프 소리를 들어보았다. 얼마 전 오디오 전문 유튜브 방송들이 앞다투어 이 앰프로 대형 스피커 울리기 실험을 생중계하듯 내보냈다. 담당 직원에게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I’m A Fool To Want You(나는 바보처럼 당신을 원해요)’를 청했다.
1958년에 나온 빌리 홀리데이 생전의 마지막 앨범 ‘Lady In Satin(공단옷을 입은 숙녀)’의 타이틀곡이다. 수년에 걸친 약물과 알코올 남용으로 전성기 때와는 달라진 빌리 홀리데이의 거친 목소리가 오히려 더 간절한 호소력을 갖는다. 부드러운 클래식 반주를 배경으로 할리데이의 보컬이 슬프게 들린다. 후반부에 나오는 트롬본 연주도 일품이다.
청음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수백만원대 포칼(Focal) 톨보이 스피커를 연결했는데 고음은 뭉개지고 저음은 붕붕거린다. 배경으로 깔리는 오케스트라 연주, 그 앞으로 도드라지는 보컬, 무대 왼쪽에서 흘러나오는 트롬본 연주가 다 뒤섞여 가운데로 나온다. 음원을 보니 MP4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앰프와 스피커로 MP4의 저급한 음원을 들려주다니. 고객이 직접 스트리밍을 해볼 수는 없다고 해서 두말 않고 돌아나왔다.
모든 네트워크 오디오 기술 제공
음악의 대중화 추세와 함께 스트리밍이나 고음질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도 오디오라고 하면 1000만원 이상의 비싼 진공관 앰프와 턴테이블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상황을 확 바꾸어버린 네트워크 앰프가 ‘윔(Wiim)’이다.
지난해 혜성처럼 나타난 윔은 50만원 정도의 가격에 모든 종류의 네트워크 오디오 기술을 제공해 비싼 음향기기의 가격 장벽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윔 출시 이후 ‘바워스앤윌킨스(B&W)’ ‘마란츠’ ‘매킨토시’ ‘캠브리지오디오’ ‘엘락’ ‘야마하’ 등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들도 100만원 이하나 약간 넘는 수준의 네트워크 앰프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윔은 미국의 스타트업 ‘링크플레이(Linkplay)’의 네트워크 스트리밍 오디오 기기 상표다. 2014년 설립된 링크플레이는 오디오 업계에서 보면 신생업체다. 구글(Google) 브로드컴(Broadcom) 인터비디오(InterVideo) 하만(Harman)에서 근무했던 핵심 인재들이 참여해 최첨단 무선기술,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에 전문지식을 제공했다.
창립자들이 이런 선도적인 회사 출신이지만 링크플레이는 완전히 독립적인 조직이다. 링크플레이 테크놀로지 주식회사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어크에 있다. 경험 많은 비즈니스 리더가 이끄는 링크플레이는 재능있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과 함께 자체 브랜드 윔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윔은 세계 주요 스트리밍 콘텐츠 제공업체와 협력해 사용자에게 다양한 콘텐츠 옵션을 제공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업체들은 스포티파이(Spotify) 아이하트라디오(iHeartRadio) 아마존-뮤직(Amazon-Music) 디저(Deezer) 냅스터(Napster) 에어플레이2 등이다. 윔은 이런 네트워크의 힘으로 오랜 전통을 가진 오디오 업계의 낡은 벽을 깼다.
‘내 방에 맞는 스피커 튜닝’ 기능도
윔 앰프보다 먼저 발매된 ‘윔 프로’가 이 회사의 첫 제품이다. 스트리밍 플레이어에 간단한 디지털 입력의 디지털 아날로그 변환기(DAC) 기능을 갖춘 네트워크 스트리머/DAC 기기다. 곧이어 윔 프로를 슬림화한 초저가 모델 ‘윔 미니’를 내놓았고, 두 모델의 성공에 힘입어 앰프 기능을 추가한 윔 앰프를 발매했다.
윔 앰프는 지난해 출시했을 때 우리나라 소비자 가격이 50만원이 채 안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이 올라 지금은 50만원이 넘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가격대는 놀라운 수준이다. 윔 앰프는 모든 디지털 스트리밍 기능을 제공하면서 채널당 8옴 60W, 4옴 120W의 출력을 낸다. 심지어 서브우퍼 출력까지 가능하다.
이더넷 연결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무선으로는 5GHz와 2.4GHz의 와이파이, 블루투스 연결도 가능하다.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것은 윔 앰프의 소프트웨어다. 크롬캐스트 에어플레이 같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하는 오디오 스트리밍과 타이달(TIDAL) 스포티파이(SPOTIFY)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모두 지원한다. 하이파이에서 가장 중요한 룬 레디(ROON READY) 기능도 지원한다.
룬(ROON)은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장치를 검색하고 자동으로 구성한다. 스트리밍, TV 사운드(HDMI), 셋톱박스, 외부기기 연결 등 현존하는 오디오 소스를 모두 소화한다. 또 윔 전용 앱인 ‘윔 홈(Wiim Home)’을 제공해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내 방에 맞는 스피커 튜닝’ 기능을 이용하면 사용하는 스피커를 공간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메모리칩 하나에 CD 1000장 저장
스트리밍 플레이는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앰프 기능이 있는 액티브 스피커를 이용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을 들으면 비싼 앰프나 LP, CD도 필요없고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가 없어도 된다. 얼마 전 35만원에 예약판매한 베토벤하우스 액티브 스피커의 경우 블루투스 연결만 해도 훌륭한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조그만 1TB 메모리칩 하나에 CD 1000장을 원본파일로 저장하는 시대다. 멜론이나 벅스뮤직(BUGS), 스포티파이(Spotify), 타이달(TIDAL)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런 수고도 필요없다. 네트워크 플레이는 편리하지만 음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플랙(FLAC) 이나 웨이브(WAV)와 같은 무손실 음원으로 저장하면 수치 정보량에서 CD와 차이가 없다. 음반 전문가들도 무손실 음원은 CD와 음질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아날로그(Analog)는 디지털(Digital)이란 개념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표현이다. 10진법이나 12진법과 같은 디지털 개념은 인간이 인식가능한 범위에서 특정한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소리는 수치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정한 파동이다. 정확한 크기를 특정할 수 없는 공기의 떨림이다.
디지털 음원은 전기가 흐르느냐 안 흐르냐를 기준으로 1과 0으로 신호를 구분하고 이 정보를 모아서 소리를 표현한다. 네트워크나 메모리칩에 저장된 음원은 디지털이지만 사람의 귀는 디지털 신호를 들을 수 없다. 음원에 저장된 디지털 데이터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꾸어주는 장치가 바로 DAC다.
디지털녹음 원음을 스트리밍해야
집으로 돌아와 윔프로 스트리밍으로 멜론에서 ‘I`m A Fool To Want You’를 들어보았다. 무손실 플랙(FLAC) 모드로 서비스하니 해상도는 좋다. 그런데 현악과 보컬, 관악의 스테레오 분리가 되지 않는다. CD를 기반으로 만든 디지털 음원인데 LP와 너무 차이가 난다. 네트워크 플레이의 ‘무손실음원’ 기준을 디지털녹음 원음 수준으로 올릴 때가 됐다.
지금까지 들어본 최고의 아날로그 음원은 ‘릴테이프’다. 1981년 서울 혜화동 음악카페에서 LP판 틀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릴테이프로 실황 녹음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었다. 첼로 연주의 저음역이 얼마나 강한지 정말 스피커 우퍼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재생하는 동안 몇번이나 앰프 볼륨을 줄여야 했다.
2차대전 때 독일에서 라디오 방송 녹음용으로 개발된 릴테이프는 방송 관계자들에게는 프로그램 녹음과 녹화에 필수적인 장비였다. 그러나 디지털화는 최고의 아날로그 저장매체인 릴테이프도 밀어냈다. 신문사에 디지털카메라가 도입되고 암실이 사라지던 시기 방송국들도 테이프리스 시스템으로 전환했고 릴테이프는 대부분 사라졌다.
미국이나 유럽 소비자들 가운데는 아직도 릴테이프의 뛰어난 섬세함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최근 LP 복고 바람과 함께 릴테이프도 다시 출시한다고 한다. 한국에도 독일 리복스사 음향제품과 복각 릴테이프를 파는 대리점이 생겼다. 그러나 아무리 음질이 좋아도 비용과 복잡한 작동방식 탓에 릴테이프는 일부 마니아층의 취미생활로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