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재판관 한명의 선택에 나라 명운 달렸다

2025-03-04 13:00:07 게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모든 변론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뿐이다. 조만간 우리는 윤 대통령과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헌재 선고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게 될 것이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재판관 빈자리 채우는 문제로 막판 변수가 생겼다며 설왕설래를 하는 모양이나 공연한 호들갑 아니면 소모전에 그칠 공산이 크다. 헌재는 최근 재판관 8명 전원이 모여 사건에 관해 토의하는 평의(評議)절차를 개시했다. 선고 열차는 이미 출발한 것이다.

만약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오늘 내일 사이 9번째 재판관을 임명한다 해도 그동안 재판을 지켜보기만 하던 신임 재판관이 선고 열차에 합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헌재는 평의에서 논의하고 투표로 결론 내리는데 뒤늦게 들어온 재판관이 평의에 들어와 의견을 개진하고 투표까지 하려든다면 사건의 변론절차를 다시 밟거나 최소한 선고일을 한참 뒤로 미뤄야 한다. 그러다 4월을 맞으면 기존 재판관 두명의 임기가 만료되고, 그 때는 그들의 연임 여부 또는 후임 임명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가열되면서 재판은 뒤죽박죽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헌재가 설마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을 것이니 9번째 재판관 변수는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8명 재판관의 결정은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한명의 선택이 인용과 기각 가를 수도

헌재 결정을 예측하는 데 있어 신문 방송 같은 전통적 뉴스매체는 비교적 이성적 논리적이며 신중하다. 반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 채널은 과격하고 노골적이고 단정적이다. 유튜브를 정보습득의 주요 매체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헌재 결정이 나왔을 때 절반은 “그럼 그렇지” 하고, 다른 절반은 “세상에, 말도 안 돼” 라고 반응할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용자들에게 한쪽 방향의 채널만 보여주며 확증편향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헌재 재판관 8명의 이념 성향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그 기초 위에서 결정구도를 예측하는 미디어채널도 적지 않다. 이들이 예상하는 헌재 결정 구도는 크게 두가지다. 탄핵인용 의견이 6표 이상 나와 윤 대통령이 파면되거나 아니면 5대 3으로 기각돼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는 것이다. 인용과 기각이 4대 4 동수이거나 인용보다 기각 의견이 더 많을 것이란 예측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구도를 좁혀 보면 보수진영에서 기각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기대하는 보수 성향의 재판관 3명에게 헌재 결정이 달려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만일 3명 모두 한 방향으로 가면 8대 0 만장일치 인용이거나 5대 3 기각이 된다. 3명 중 1명이라도 다른 2명과 다른 의견을 내면 7대 1 또는 6대 2로 탄핵 인용이 결정된다.

그러니까 더 압축하자면 인용과 기각을 가르는 열쇠가 단 한명의 재판관 손에 쥐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는 그 한명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이 나라의 정의와 법치가 바로 서거나 광기와 혼돈의 수렁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선고일까지 기다리는 마음 못내 조마조마하다.

실제 생중계된 헌재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 우려할 만한 장면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증인심문을 하면서 그날 밤 대통령이 끌어내라고 한 대상이 ‘의원’인지 ‘요원’인지 또는 ‘인원’인지 다투는 장면이다. 온 국민이 TV로 국회 상황을 지켜본 마당에 어떤 어휘를 쓰든 무슨 상관인가. 또 대통령 전화를 받고 급히 종이에 메모한 공무원에게 왜 ‘검거 지원 요청’이라고 쓰지 않고 ‘검거 요청’이라 썼느냐고 추궁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계엄이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는 판단에는 재판관들 사이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번 기회에 본의 아니게 온 국민이 헌법을 공부하게 돼 상식이 되어 버린 헌법 77조는 비상계엄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발동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계엄이 발동된 지난해 12월 3일 우리 모두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전시나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는 전혀 없었다. 그러기에 한밤 중 소집통보를 받고 대통령실로 달려간 국무위원들 중 계엄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중에 윤 대통령은 “계엄으로 실제 아무 일도 일어난 게 없다” “이번 계엄은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고 했는데, 국민을 조롱하는 뻔뻔한 말이다.

헌재 역사 앞에 후회없는 결정 내려야

12.3 비상계엄으로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총 든 군인이 국회를 에워싸는 장면이 지구촌 각국에 긴급 뉴스로 보도되는 순간 국가신인도는 수직 추락했다. 경제는 환율불안에 소비침체로 갈수록 나빠지고 있고, 국민은 두 쪽으로 갈라져 갈등 반목 대립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계엄이 불러온 국력의 심대한 손상, 이 죄과(罪科) 만으로 대통령 파면의 사유는 충분하다. 헌재가 역사 앞에 후회없는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신한대 특임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