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재정지출 축소, 트럼프정부의 미망

2025-03-06 13:00:04 게재

국내총생산(GDP)는 한 국가의 경제활동을 평가하는 일반적 잣대이다. 가계와 기업, 정부의 소비와 투자 외에 해외부문과의 교역(수출입)이 더해져 GDP가 산출된다. 지난 2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GDP 산출 계산식에서 정부지출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러트닉 상무장관이 이런 발언을 한 건 두 가지 의도가 있다고 본다. 먼저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차별화를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 때 시행됐던 과도한 재정지출에 대한 반감을 여러 차례 표출한 바 있다. 당장 미국으로 제조시설을 유치하는 대가로 보조금을 주기로 약속했던 IRA(인플레이션방지법)와 Chips Act(반도체법)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속내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가 수장으로 있는 ‘정부효율부’도 정부의 지출 축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이다.

‘정부효율부’의 공격적 재정지출 축소로 GDP 성장률 둔화 가능성

한편으론 정부지출 축소가 가져올 GDP성장률 둔화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2023년 GDP성장률은 2.9%였고, 2024년에는 2.8%를 기록했다. 잠재성장률 추정치인 2%를 훨씬 뛰어넘는 성장세를 2년 연속 보여줬다. 이례적인 고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은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지출이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2023년과 2024년 모두 GDP 대비 7%대까지 확대됐다. 3년 넘게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의 2023년 GDP 대비 재정적자가 4.1%였다. 국가의 모든 경제적 자원을 총동원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보다 재정적자 규모가 크다는 사실은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지출이 너무도 과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으로 미국경제의 재정 중독증이 심하기 때문에 ‘정부효율부’를 만든 목적대로 재정지출을 공격적으로 축소할 경우 미국 GDP성장률은 크게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러트닉 상무 장관의 발언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면피성 성격도 있었다고 본다. 과도한 재정지출을 줄일 것이라는 ‘포부’와 그럼으로써 초래될 GDP성장률 둔화 가능성이라는 ‘우려’가 러트닉 장관의 발언 속에 녹아들어 있지만, 이와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먼저 재정지출을 유의미하게 줄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어떤 행정부도 재정지출 축소에 성공한 경험이 없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시각, 즉 대공황 이후 1960년대까지 서구 자본주의 주류질서였던 ‘케인즈 경제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집권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부의 존재 그 자체가 문제’라고 밝혔다.

‘작은 정부’에 대한 신념으로 집권한 레이건 정권이었지만, 레이건 1기(1981~84년) 행정부의 연평균 재정지출은 8140억달러로, 전임 카터 행정부의 5200억달러 대비 56%나 급증했다. 이후 정부의 역할 축소와 시장의 자율성 증대라는 신자유주의 철학으로 집권했던 (조지 H.W.)부시, (조지 W.)부시, 트럼프 1기 행정부 모두 직전 정권 대비 재정지출이 크게 증가했다.

재정지출의 항구적 증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공무원 집단의 이해도 반영돼 있을텐데, 일론 머스크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재정지출 축소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정권은 없었다.

역사적으로 재정지출 축소 성공적으로 이뤄낸 미 정권 없어

한편 재정지출 축소와 무관하게 미국 경기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부과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높여,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금리가 고공권에서 오래 유지되면 소비와 자산시장에 주름이 잡힐 수밖에 없다. 경기가 둔화되는데, 재정지출을 줄인다?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러트닉 장관의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포부’는 이루지 못할 미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