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외교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회복만이 살길이다
바야흐로 난세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느 하나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다. 정치적 상황이 그렇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철이 들 즈음에 미국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저절로 배우게 된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겁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풍요를 누렸다. 신자유주의 열풍은 심각한 부의 양극화를 가져왔지만 한국민들의 뛰어난 적응력 덕분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시대가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개발도상국 중국을 세계화의 물결 속에 편입시켜 누렸던 달콤한 열매가 어느덧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는 독이 되었고, 미국은 뒤늦게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부랴부랴 보호주의로 바꿔나가고 있다. 그 조짐이 보인 지는 오래됐지만 트럼프 2기 들어서는 거침이 없다.
패권 도전국 중국에 대한 관세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동맹국을 대하는 트럼프정부의 태도는 아무리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는 국제질서라고 하더라도 경악할 만하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국경을 맞대고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에 속해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향해서 25%의 관세를 논하는 것은 그 효과가 어느 쪽으로 나오든 과격하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관세폭탄 맞은 동맹들, 한국도 예외 아냐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추가 관세가 부과되었고 향후 한국산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에도 관세부과가 검토되고 있다.
미국우선주의를 주문처럼 외우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젤렌스키를 대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으로 트럼프의 진면목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러시아라는 같은 적을 대하고 있는 파트너 국가가 맞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매몰찼다.
반면 미국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종전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도 빼놓지 않고 있다. 마치 식민지시대 제국들의 협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가히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트럼프 정부다운 모습이었다.
이처럼 우방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은 트럼프 정부의 행동에서 한미동맹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한 한국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와 같은 금전적인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북한 핵문제에 대한 트럼프정부의 정책에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북한의 핵문제에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외교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이 북한 핵문제에서 조속한 성과에 집착해 북한 핵을 인정하고 당장 미국의 안보에 시급한 핵군축 협상에 나서게 된다면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들였던 우리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문제에서와 같이 회담의 빠른 성사와 효율적 합의 도출에 집착해 한국을 패싱하고 양자 회담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현재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D.C. 소재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의 제니퍼 캐버너 선임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의 ‘안보 라인’에 한국과 대만이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멈춰선 한국의 외교, 민주정부 시급
이처럼 사면초가의 외교적 환경 속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할 한국의 정치는 지난 12.3쿠데타 이후 멈춰버렸다. 위헌적인 불법 비상계엄은 국내정치만 멈춰 세운 것이 아니라 냉혹한 국제정치의 격변 속에서 국익을 지켜내야 할 외교의 기능마저도 오작동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마침내 미국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하루빨리 이 난세를 종식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민주정부가 들어서야만 거대한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책임이 막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