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칼럼

‘민감국가’의 잠 못이루는 밤

2025-03-19 13:00:00 게재

미국 에너지부가 미국이 신뢰하기 어려운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 리스트 기타 국가 항목에 한국을 포함시킨 것이 공식 확인되었다. 원자력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분야 협력이 제한될 수 있는 신뢰도 하위국이 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극우파는 “야당의 탄핵 소추, 이재명의 친중반미 정책 탓”에 책임을 미룬다. “혹시라도 이재명 대표가 정권을 잡게 되면 민감국가가 아니라 위험국가가 될 것”이라며 대놓고 자기 지지층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자체 핵무장”논의를 확산하고 윤 대통령이 2023년부터 핵무장 발언을 계속한 것이 미국정부의 핵확산을 경계하는 정책을 부추겼다며 윤석열정부와 여당에 초점을 맞춘다. ‘민감국가’ 지정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도 여야는 ‘네 탓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외교부는 17일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 최하위 단계에 포함한 데 대해 “미 측을 접촉한 결과 이는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민감국가 지정은 바이든정부 시절인 올 1월 초에 한국정부를 향해 이미 내려진 판단판단이지만 미국정부의 정확한 해명은 아직 없었다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민감국가’ 지정에도 광장에선 ‘네 탓’만

문제는 이 주제 역시 다른 수많은 경우처럼 윤석열 탄핵과 탄핵반대 군중 사이에서 광장의 대결 주제로 던져졌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도, 정상화를 위한 정치적 논의도 실종되었다. 탄핵 찬반 대결, 내 편이 아니면 적의 편이다. 경찰이 “대화경찰”을 만들어 양쪽 시위대가 충돌하지 않도록 현장 설득에 나서고 있을 정도로 시위현장은 위태롭고 사람들의 신경은 격발 직전이다.

하지만 햄버거점에서 비상계엄 모의나 하던 윤석열 정부가 두달 동안이나 민감국가 지정사실 조차 몰랐던 점, 이제 어떤 노력으로도 트럼프를 상대로 이를 시정하긴 쉽지 않다는 점만은 최근 한국 언론사 기자들의 직접 질의로 이미 확인되었다.

주말인 15~16일 서울 광화문과 시청, 경복궁에서 헌법재판소에 이르는 대규모의 군중집회는 서로 목청을 높여 윤 대통령에 대한 “즉각 파면”과 “즉각 복귀”를 외쳐 댔지만 이제 국민의 피로도는 한계에 이른 것 같다. 농사일을 버리거나 직장을 떠나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번 주면 끝난다”는 희망으로 헌재의 빠른 판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그 시한은 더 길어지고 있다.

신동엽 시인은 “… 껍데기는 가라 / 4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로 끝나는 시 ‘껍데기는 가라’ 1967년 발표했다.

신동엽의 4월은 T.S.엘리엇처럼 “죽은 시신에서 싹이 돋아나는 잔인한 4월”이 아니라 동학혁명과 4.19혁명을 기리는 혁명의 달, 우리 역사의 이정표이다. 지금처럼 광장의 외침이 서로에 대한 욕설과 거짓 주장의 난무, 분렬의 극한에 달한 광경은 역사의 어느 부분에도 없다.

그는 같은 해 나중에 장시 ‘금강’에 민주국가를 위한 영원의 하늘, 영원의 강물을 염원하는 글도 썼다. “씻어내면 또 모여들 올 텐데/ 씻어내면 /또 열흘도 못가 모여들 올 텐데/이틀도 못가 /검은 찌꺼기들은 또 모여들 올텐데/ 그러나 우선/ 오늘 할 일은/씻어 내는 일/ 저 하늘의 검은 찌꺼기/ 오늘 할 일은 모두 씻어 내는 일…”(부분)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당시엔 국민 누구도 지금과 같은 광장의 극한대립을 상상할 수 없는 한마음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당에서도 계엄에 반대자가 많았고 계엄해제 표결에 참여하기도 했다.

애초부터 공정과 상식, 법과 질서의 수호를 말끝 마다 부르짖던 대통령이 계엄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미쳤나” “내가 잘못 들었나” 같은 표현이 많았다. 애타는 마음은 국회의 탄핵해제 가결에 모아져 간절히 하나가 되었다. 지금은 대통령의 석방과 온갖 신출귀몰한 사법절차적 저항, 여론몰이 때문에 전 국민이 두쪽 났다. 쉽게 아물지 못할 영구적 상처를 안게 되었다.

미국발 피해보다 타락한 정치가 더 문제

‘민감국가’가 된 지금 대한민국은 핵무기 개발제한 같은 미국발 피해보다는 적반하장의 타락한 정치 도의, 사법 방해와 사회적 혼란, 심지어 서부지법 폭도난입 같은 내란사태의 연장이 더 큰 역사적 문제다. 헌재 공격과 야당 대표 암살 같은 극단적 선동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치권, 특히 내란에 동조하는 정당은 지금이라도 계엄 전으로 돌아가 양심적 의회 정치를 복원하고 내란의 검은 찌꺼기를 싹 씻어내야 한다. 어떻게 얻어 낸 민주주의인데, 더러운 하수도 대신 유구한 큰 강으로 흐를 수 있게 하라.

언론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