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넘어 협력으로, 미래교육 새 패러다임 만들겠다”
인터뷰 | 정근식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의대쏠림 우려·대입개혁 TF 가동 예정 … “사교육 부조리 근절 대책 수립해 집중 대응”
지난해 10월 17일 취임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취임 후 5개월간의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밝혔다. 정 교육감은 혁신학교 정책, 대입제도 개혁, 사교육비 경감, 의대증원 논란까지 다양한 교육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제시했다.
정 교육감은 또 고교 서열화와 교육 양극화 해소, IB 관심학교 운영, 고교학점제 안착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특목·자사고가 있는 지역으로 교육 격차 해소가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울러 AI 디지털교과서 보급 현황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원 수급 문제, 기후위기 대응 교육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견해를 밝혔다. 특히 급격한 교원 정원 감축으로 인한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지적하며 적정 교원 수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의 인터뷰는 1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본지가 내일교육과 함께 진행했다.

●취임 후 혁신학교 정책에 대한 평가와 발전 방향은?
교육감 취임 이후 ‘미래를 여는 서울교육대전환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전문가와 시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혁신교육을 통한 교육공동체의 자치 문화 구축, 지역사회와 협업 등의 노력은 지난 10년간 어느 정도 일반화돼 현장에 정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서울교육이 지금까지 기울여온 혁신교육의 성과를 충실히 이으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서울교육 방향으로 ‘미래를 여는 협력교육’을 정했다.
●협력교육이란 무엇이며 왜 강조하는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해결 방안을 만들어 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창의와 공감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경쟁과 협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선진국을 추격하던 과거에 효과적이었던 경쟁교육은 정해진 정답을 빨리 찾을 수 있을지언정 다양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주변을 두루 살피며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돌아볼 때 창의성을 기를 수 있고 친구를 경쟁자가 아닌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동반자로 생각할 때 공감의 힘을 키울 수 있다.
●대입 제도가 초중등 교육의 병목 현상을 초래한다고 지적하셨는데, 교육청 차원의 개선 노력은?
초중등교육은 미래 핵심 역량을 함양하는 방향으로 혁신됐지만 현행 대입제도나 2028학년도 대입제도가 초·중등교육의 혁신과 선순환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제도인가에 대한 아쉬움이 교육계 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4월부터 ‘각 사회 분야의 미래 전망과 교육’이라는 큰 주제로 연속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포럼과 함께 중등교육과 선순환할 수 있는 미래형 대입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도 진행될 예정이다. 더불어 교육청 내·외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문가협의체 또한 3월 중에는 구성해 운영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사교육비가 계속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진단과 대책은?
사교육비 문제는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큰 부담이 되는 상황으로 최근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그 총액이 29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학부모님들이 사교육을 찾는 큰 이유는 선행학습과 심화학습에 대한 요구라고 보인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과열 경쟁을 유발하는 대입제도나 사회·경제적 지위 양극화 현상 완화가 선행돼야 하지만 당장 공교육 기관에서는 심화학습에 대한 요구는 어느 정도 소화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불법 사교육 기관 근절, 부당광고 모니터링 등 사교육 부조리 근절을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의대증원 논란이 서울 지역 학교에 미치는 영향은?
의대 정원 문제는 우리 학생들의 진로 진학 지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기회가 확대되는 면도 있고, 또 교육과정의 안정적 운영이 저해되거나 생명과학 등 특정 과학 과목 선택 쏠림이 강화되는 면도 있다. 의대 정원에 큰 변화가 생기면 의대 쏠림 현상이 증폭돼 N수생이 늘어나고 사교육비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과학영재들이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진로 대신 의대로만 쏠리게 된 배경에는 외환위기 이후의 양극화 및 고용 불안정 확대와 정서 및 가치관 변화가 있다. 학생들이 특정 진로로 쏠리는 배경에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교육청만의 노력으론 한계가 있으며 중앙정부와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서울은 고교 서열화와 교육 양극화가 심한 지역인데, 이에 대한 입장과 대책은?
서울은 고교 서열화 및 교육 양극화가 가장 심한 지역이며 사교육 시장도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특목·자사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사교육비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 교육청은 고교 서열화 완화를 위해 특목·자사고 입시를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변경하고, 교육부와 함께 자사고와 일반고의 교육과정의 자율성 차이를 완화했고, 일반고로 전환하면 전환지원금 25억원을 지원하는 등 행·재정적 지원을 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서울의 자사고 중 11개 교가 일반고로 전환해 27개교에서 16개교로 줄었다.
●고교 체제 개선과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계획은?
현재로서는 교육부가 고교체제를 일반고, 특성화고, 특목고, 자사고 형태로 유지하고 있어 서울시교육청 차원의 고교 체제 개선은 어렵지만 고입을 위한 과도한 선행학습 유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기주도학습전형’이 바람직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 감독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대입제도 개선을 위해 고민해 왔고 ‘2025년 서울교육 핵심 정책과제’ 중 ‘고교교육과 대입의 선순환 체제 구축을 위한 미래형 대학입시제도 방안’ 제안이 있다. 서울 교육청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전문가들과 포럼도 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학입시제도 방안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서울의 교육 환경 격차를 줄이는 방안은?
서울의 교육 격차와 관련해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양극단, 격차가 증가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특히 교육 격차와 관련해서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대한 원인을 기초학력, 심리·정서, 적응·관계, 경제, 사회·문화 등 학생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폭넓게 바라보고 그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IB 관심학교를 발표했는데, 기대 효과는?
우리 교육청은 국제 바칼로레아(IB) 학교 운영을 확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수업·평가의 성과를 토대로 IB 프로그램 도입·운영을 통해 미래 역량 중심 교육과정,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탐구형 수업,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키우는 서·논술형 평가 체제 마련, 교수·학습 중심의 협력적 학교 운영을 지원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이와 함께 IB학교 운영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맞는 한국형 바칼로레아(KB) 기반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
●고교학점제 안착이나 중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부 정책 제언은?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고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조건은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과 학생 한명 한명의 성장을 지원할 충분한 교원 수 확보에 있다. 학생 수에 따라 교원 정원을 산정하는 기계적인 방식으로는 새로운 교육적 수요를 반영하고 공교육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정부는 적정 교원 정원을 배정하여 교육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고교학점제 취지에 적합한 내신 평가체제와 대입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다른 학생들과 비교할 때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학습 경로에서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루었는가를 확인하는 평가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 서울시내 보급 현황과 향후 계획은?
2025학년도에는 AI 디지털교과서 활용 여부를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 자치와 자율성을 존중하여 학교 내부적으로 교과협의회,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AI 디지털교과서를 선정한 학교수는 현재 기준으로 초중고 326교 내외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육자료로서 더 나은 학습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학생 역량 함양의 관점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현장의 선생님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학생 수 감소와 교원 수급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학령인구 감소로 교원 정원이 계속 줄고 있으며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교사 수 정원도 심하게 감소했다. 더욱이 현재 학생 수가 줄어드는 속도에 비해 교원 정원 감축 속도가 너무 빨라 현장의 안정적인 교육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2012년생(흑룡띠)의 중학교 입학에 따라 6411명 증가가 되었음에도 교원 정원이 감축되어 학급수 감축으로 인한 과밀학급 발생, 학급당 학생수 증가, 교사 1인당 학생수 증가 등으로 학교 현장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김기수 기자·정나래 내일교육 기자·윤소영·김민정·민경순·이도연 리포터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