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 인권헌장 제정 ‘방치’
종교단체 반발 논의 중단
1년 넘도록 손 놓고 뒷짐
전남도가 인권적 가치 확장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추진했던 ‘도민인권헌장’ 제정을 일부 단체 반대를 이유로 1년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주민 등이 갈수록 늘어나는데도 제정에 필요한 사업계획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9일 전남도와 도의회에 따르면 전남도는 2023년 초 도민이 누려야 할 인권적 가치와 규범, 사회적 약자 등을 보호하는 도민인권헌장 제정에 착수했다. 후속 조치로 같은 해 4월 인권 전문가와 분야별 대표 50명이 참여한 인권헌장 제정위원회와 초안 작성위원회를 각각 만들었다.
당시 공개된 초안은 전문을 비롯해 전남도민의 권리와 의무 등 22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또 인권헌장 이행방안으로 인권증진 기본계획 수립과 시행, 인권실태조사 실시와 공포, 정부와 인권단체 등과 협력해 다양한 사업 추진 등을 추가했다.
특히 순천 등 전남 22개 시·군에 인권증진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요청해 11개 시·군이 참여하는 성과를 만들었고, 2023년 10월 25일 도민의 날 기념식에 맞춰 선포할 예정이었다. 이런 일정에 따라 같은 해 9월부터 인권헌장 제정에 필요한 공청회 등을 개최했다.
하지만 종교단체 등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자 제정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중단했다.
당시 종교단체 등은 인권헌장 초안 2조(차별금지원칙)에 수록된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이 어떤 이유로도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동성애와 성전환 등을 옹호한다며 공청회 개최를 원천 봉쇄했다.
뜻하지 않는 반발에 부딪힌 전남도는 내용 수정과 선포시기를 늦춰 반대 단체를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올해는 제정에 필요한 사업계획조차 만들지 않았다.
반면 비슷한 시기 평화인권보호헌장 제정을 추진했던 제주도는 최근 종교단체 반대에도 두차례 공개토론회를 갖는 등 제정 의지를 보여 대조를 이뤘다. 현재 인권보호헌장을 제정한 곳은 광주와 충남 등이다.
전남도의회는 외국인 주민 등 사회적 약자 증가 추세에 맞춰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남도 외국인 주민은 전체 인구 5% 정도인 8만6729명(1월 기준)으로 증가 추세다. 특히 전남도는 인구 감소에 대비해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박형대(진보당) 전남도의원은 “반대가 있더라도 공론화 작업을 계속 거쳐야 사회가 발전한다 ”면서 “여러 차별적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도는 이런 지적에도 사업 추진에 소극적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반대 단체를) 단기간에 설득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합의할 방안을 찾도록 물밑 접촉을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