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러시아, ‘12시간 마라톤 휴전 협상’

2025-03-25 13:00:13 게재

25일 공동성명 발표 예정 러-우, 협상 중에도 공습

러시아 대표단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 종식을 위한 미국과 러시아 간 회담을 마치고 리츠칼튼 호텔을 나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 고위급 대표단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부분 휴전안을 놓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12시간 넘는 마라톤 회담을 벌였다.

이번 회담은 올해 들어 양국 간 열린 대화 중 최장 시간 동안 이어진 협상이다. 결과는 25일 크렘린궁과 백악관을 통해 공동성명 형태로 발표될 예정이다.

24일(현지시간)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서 오전 10시경 시작된 회담은 오후 10시 30분에 종료됐다.

리아노보스티와 타스 등 러시아 언론은 회담이 ‘긍정적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고 전했으나, 러시아 대표단은 회담 후 별도 발언 없이 자리를 떠났다.

이번 협상에 미국 측에서는 마이클 앤톤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키스 켈로그 트럼프 대통령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석했고, 러시아 측은 상원 국제문제위원장인 그리고리 카라신과 연방보안국(FSB) 고문 세르게이 베세다가 대표로 나섰다.

회담의 핵심 의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로 합의하고, 1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동의를 얻은 ‘부분 휴전안’이다.

여기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및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30일 동안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국 간 민간 기반 시설에 대한 공습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이 조치는, 향후 전면적인 정전 협상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 문제도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다뤄졌다. 태미 브루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사우디 회담에서 흑해로 휴전 범위를 확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역시 흑해 곡물 협정이 테이블에 있음을 확인했다.

미·러 회담에 하루 앞서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도 5시간 가량의 실무 회담을 가졌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회담 후 SNS에서 “논의는 생산적이고 밀도 있었다”며 “에너지 관련 핵심 사안을 다뤘다”고 전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은 회담 장소인 리야드에서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미국 주도의 휴전 논의가 한창이지만 전장에서는 여전히 격렬한 공습이 오가며 민간인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24일 러시아가 밤사이 드론 89대를 발사했으며, 이 가운데 57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키이우 인근에서는 드론 공습으로 인해 민가가 피해를 입었고, 37세 남성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부 접경지 수미주에서는 병원, 학교, 주거지역 등이 포격을 당해 최소 6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어린이 14명도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 중남부 자포리자 지역에서도 고층 건물들이 드론 공격으로 훼손됐으며, 사이버 공격 피해도 보고됐다. 국영 철도회사인 우크르잘리즈니차는 대규모 해킹으로 온라인 시스템이 마비돼 기차표를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하게 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도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내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24일 새벽 우크라이나 드론이 크라스노다르주 내 카스피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 석유 펌프장을 공격해 약 1만1000여명의 주민이 전력 공급을 받지 못했다. CPC는 러시아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미국 등의 기업이 참여한 국제적 에너지 인프라로 이번 공격은 국제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는 또 크림반도와 벨고로드 지역의 가스시설도 연쇄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벨고로드에서는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는 “우크라이나는 국제적 접촉 직전에 항상 공격에 나선다”며 “그들에게는 평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번 리야드 회담은 비록 ‘부분 휴전’ 수준이지만 교착 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양측이 처음으로 미국의 중재 하에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특히 미·러 회담이 12시간 넘게 이어졌다는 사실은 서로 간의 입장차이가 상당하지만 동시에 해법을 모색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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