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국 조선산업 호황기 이어가려면
지난달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선박 발주량에서 경쟁국인 중국을 제치고 수주 1위를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와 중국 제조선박에 대한 규제 논의가 진행중인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앞으로 한국 조선산업 호황기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한국은 3월 세계 선박 발주량 가운데 55%를 수주해 35%에 그친 중국을 제치고 1위를 탈환했다. 1월 한국이 세계 선박 수주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가 2월에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고부가가치 선박수주 여부를 알 수 있는 척당 CGT(환산톤수)를 보면 한국은 3월에 4만8000CGT인 반면 중국은 1만7000CGT에 머물렀다. 한국은 수주 선박수가 17척이고 중국 31척이었다. 척수가 적은데도 CGT가 높은 것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많이 수주했다는 뜻이다.
3월 중국 제치고 세계 선박 발주량 1위, 고부가가치 선박 발주도 늘어
한국 조선산업은 1970년대부터 빠르게 성장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췄다. 국내 1, 2, 3위인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이 글로벌 1, 2, 3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높은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는 현장 작업자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숙련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선박건조용 도크가 부족하면 여러 개 선박을 도크 안에서 동시에 건조하는 기술을 개발해 생산성을 높였다.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작업자들이 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빠르게 발견하고 바로 해결책을 찾아 적용해 품질과 생산성을 높였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운반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기술도 다른 나라 조선소에 앞섰다.
최근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탈탄소ㆍ디지털 전환의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친환경ㆍ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수주했다. LNG선과 암모니아선이 그 중심에 있다. 글로벌 선복량 증가와 노후 선박 교체 주기에 접어들어 앞으로 10년간 글로벌 수주량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부터 건조량보다 수주량이 높은 상태여서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여파로 글로벌 조선사와 건조인력이 감소했고 남아 있는 조선사도 투자 확대에 보수적이어서 건조능력 축소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조선사 수는 2010년 726개에서 2023년 278개로 급감했다. 그러다보니 새로 배를 만드는 건조 비용을 종합한 지수인 신조선가 지수는 지난해 6월 현재 2020년에 비해 49%가 상승했다. 2020년 이후 신조선가 지수는 우상향하고 있다. 여기에 온실가스 규제에 대비한 친환경 선박과 2030년 도입 예정인 자율운항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이 주류를 형성할 것으로 보여 조선산업 발전이 점쳐진다.
하지만 미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 이후 이같은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 선박 발주량은 미ㆍ중 무역분쟁을 비롯한 무역전쟁에 좌우된다. 미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는 수입물품 물가에 반영되고 이는 미국 소비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무역 물동량 축소와 신규 선박 발주량 지체로 나타나 국내 조선산업에 악재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자국 조선산업 발전에 한국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행정부는 중국 조선소에서 만든 선박뿐만 아니라 해당 선박을 보유한 선사 전체에 항만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초안을 마련한 상태다. 미국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100만~150만달러를 내게 된다. 결국 수출입 화주들은 항만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 선사나 중국 건조선박을 꺼리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 3월말 이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는데 미국 해운산업 재활성화라는 목표에 전반적 지지가 있었지만 미국경제와 글로벌 경쟁력이 미칠 부작용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는 등 치열한 논쟁도 있었던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조선산업정책 대형조선사 중심인지, 대ㆍ중소 조선사 유기적 공존인지 과제 남아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조선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선산업 생태계 구축과 숙련공 확보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조선소가 확보한 일감이 최소 3년 이상이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미국의 중국해운 규제가 우리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다. 국내 조선산업 구조는 대형조선소와 소수 중형조선사만 살아남은 상태다. 중국과 가격경쟁에 뒤쳐진 중소조선소 대부분이 구조조정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하면서 생산 척수가 감소해 범용 조선기자재산업도 축소됐다. 조선산업 정책이 대형조선소 중심으로 갈 것인지 대ㆍ중소 조선사가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생태계를 구축할 것인지 따져볼 문제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