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지도자의 거짓말과 일구이언(一口二言)
파면된 두 대통령의 공통점이 있다. 하야 기회를 놓친 거다. 탄핵보다는 그나마 덜 추한 모습으로 떠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대통령실은 최고급 정보들이 모이는 곳 아니던가. 나름대로 관련 자원을 총동원해 내밀한 정보까지 모으고 분석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각을 확신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더 위헌·위법이 명확한 윤석열 대통령도 그랬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각하나 기각을 점쳤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8대0 전원일치로 파면될 줄 알았다면 굴욕적인 파면을 기다리지 않았을 지 모르겠다.
정보는 충분했을 것이다. 검사정권인데 순망치한(脣亡齒寒) 법조인들로 구성된 헌법재판소 아닌가.아마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무시했을 게다. 결국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사실만 모으니 진실과 동떨어졌던 거다.
전조는 있었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가 그랬다. 당초 사우디아라비아와 경쟁에서 2차 뒤집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결과는 2023년 11월 29일 실시한 1차 투표에서 우리는 29표, 사우디는 119표였다. 외교팀과 관련 부서의 정보수집 능력이 그토록 엉터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보기 좋고 듣기 좋은 사실만 원하는 대로 모아서 보고하지 않았을까.
그 시작은 ‘바이든, 날리면’ 사건일 것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청력 테스트를 했지만 결국 진실보다는 권력자가 원하는 바에 과학도 법률도 맞추어졌지 않은가. 윤 전 대통령은 흑과 백을 뒤바꾸는 권력의 엄청난 효능감을 느꼈을 듯하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
돌이켜보면 윤 전 대통령의 헌재 탄핵심판 변론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거짓말을 주저없이 내뱉는 모습이다. 국정원 홍장원 1차장에게 방첩사를 도우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 격려차원의 전화였다고 강변했다. 거짓말이다. 국회 내의 인원(국회의원)을 끄집어 내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은 인원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그는 이런 빤한 거짓말이 통하리라 믿었던 듯하다. 바로 ‘바이든, 날리면’ 효과이겠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통한 지록위마(指鹿爲馬) 권력의 힘이 현대에도 꿈틀댔던 거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다. 논어 안연편에 공자 말씀이 그랬다. 나라를 보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군사와 식량보다 신뢰라고 말이다. 요즘으로는 외교안보와 경제보다 신뢰 확보가 우선이라는 거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도 신뢰였다. 문형배 소장대행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적시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인 거다. 신임을 받지 못한 지도자는 더는 지도자가 아니다. 그저 한낱 필부(匹夫)로서 방벌(放伐)의 대상일 뿐이다.
신뢰의 핵심은 언행일치다. “모든 문제는 여기(here)애서 멈춘다”고 했지만 실제는 “모든 책임은 저기(there)에 미룬다”는 것이었다. 언행 불일치이다. 헌데 언행이 다를 뿐만 아니라 말이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면 어찌 하나.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일구이언(一口二言) 말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에서 선출한 세명의 헌재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6일 기자회견에서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럼에도 한 대행은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마 재판관 후보자와 함께 대통령 몫 재판관 두명을 슬쩍 끼워 넣어 지난 7일 동시에 지명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것이다.
요즘은 ‘남아일언 중천금’이란 말을 삼간다. 성차별 요소 때문이다. 대신 중국에서도 일언구정(一言九鼎)을 쓴다. 말 한마디 무게가 전국시대 보물인 아홉 개 솥과 같다는 거다.
공직에 나아감은 어렵게 물러남은 쉽게
거짓말을 일삼거나 일구이언을 하면서도 공직에 연연한 이들은 왜 그럴까. 감투의 단맛에 취했거나 자신이 제일 잘 났다는 오만에 빠진 것 아닐까. 맹자는 공자가 공직을 맡을 때 “예(禮)로써 나아가고 의(義)로써 물러났다”고 했다. 이를 주자는 “(공직에)나아감은 어렵게, 물러남은 쉽게 하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바로 난진이퇴(難進易退)이다. 반대로 쉽게 공직을 맡고 떠날 때는 머뭇거리면 공직사회가 문란하게 된다고 했다.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빚어진 혼란은 과연 언제쯤 수습될까. 거짓말과 일구이언, 견강부회로 무장한 ‘내란 카르텔’은 깔끔하게 정리될까. 무책임 자리보전과 알박기 헌법재판관 지명 행태에서 그들의 끈끈한 공범의식 또는 봄 속의 겨울을 예견한다면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