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중일갈등 장기화가 한국 외교에 던지는 화두

2025-12-05 13:00:02 게재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보수내각이 출범한 지 한달도 안되어 일본 외교가 중대한 시련을 맞았다. 11월 7일 국회 답변에서 총리가 “대만유사는 일본의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한 것이 발단이다. 일본은 일관된 안보정책의 연장선이라고 하지만 중국에는 핵심이익 중 핵심인 대만문제의 레드라인을 건드린 발언이었다.

중국은 즉각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대응수위를 높였다. 외교적 항의와 비난에 이어 일본여행 자제령, 일본영화 상영 중지, 각종 교류행사 취소,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으로 이어졌으며 희토류 수출 제한 등 경제보복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취소, 유엔 무대에서 여론전 등 다자 외교전선으로 갈등이 확산되고, 일본 주변에서 군사활동도 강화되고 있다.

사태 촉발의 핵심은 전략적 모호성의 파기다. 일본은 2015년 안전보장법제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존립위기 사태’ 개념을 도입하며 어떤 사태가 이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구체상황에서 모든 정보를 종합해 판단한다”는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다카이치 총리가 이를 대만유사와 직접 연계하는 발언으로 금기를 깼다. 일본 국내에서 비판과 우려가 제기되자 총리는 구체 사례를 언급한 것은 반성할 점이라며 한발 물러섰으나 발언 철회는 거부했다.

양국 국내정치 환경이 갈등해소 어렵게 해

중국은 대만 민진당정권과 가까운 다카이치 총리를 이전부터 주시해왔으며 총리로 선출된 직후에는 이례적으로 ‘역사와 대만문제에서 약속 준수’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그런데도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후에 대만 대표와도 회담해 중국의 불신감을 증폭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다카이치 발언이었기에 중국을 극도로 자극했고 중국의 강경 대응은 예견된 것이었다.

일본은 총리의 발언철회 표명 없이 외교경로를 통해 사태수습을 도모했지만 촉발된 중일 긴장은 구조적 배경요인 때문에 더욱 꼬이면서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선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대만문제의 민감성이 고조되면서 중일갈등도 구조화되고 있다. 미국은 대만유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고 대중국 억지전략을 강화해왔는데,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일본의 대만유사 발언을 미일동맹의 무력개입 신호로 해석하기 쉽다.

시진핑 주석이 11월 24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 대만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일본 압박과 미국 견제를 동시에 노린 행보로 보인다. 대만사태 개입에 모호성을 유지해온 미국이 다카이치 발언에는 공개 지지를 표명하지 않고 있어 이번 긴장사태는 일중 양자 간에 풀어야 할 난제가 되었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의 국내정치 환경은 이번 긴장의 완화·해소를 어렵게 한다. 중국은 최고지도자가 강조해온 국가핵심이익에 관해 타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체제다. 일본은 반중 정서가 강한 보수우경화 속에서 다카이치 총리 지지율이 70%에 달하고 정부여당 내에는 ‘대만유사 곧 일본유사’라는 소신을 갖는 중진들이 포진해 있어 발언의 취소 등 중국 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내부조정은 어렵다.

과거 중일갈등 조정에 역할을 했던 비공식 외교채널이 약화된 점도 구조적 문제다. 중국통 자민당 중진들의 영향력 감소, 중국인맥에 강한 공명당의 연립정권 이탈로 실질 대화에 접근하는 기회 마련이 어렵고 외교일선에서 자극적인 대응만 오가고 있다.

최근 중일관계는 개선 조짐과 긴장이 교차하는 상태가 반복해왔는데, 대만·안보·국내정치라는 구조적 요인들이 얽히며 갈등이 더 고착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정부 내에서도 이번 냉각기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북아 대화 중단, 한국 균형외교의 시험대

다카이치 발언의 파장은 대만문제와 같은 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등 축적된 외교적 지혜의 경시가 얼마나 큰 파장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일본의 정치구도 변화로 정치지도자가 강경보수 소신을 그대로 표출하고 논란 후에도 정면대치를 감수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의 역사문제 관련해서도 유사한 태도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일갈등으로 한중일 3국 대화가 쉽게 중단되는 것을 거듭 보게 되었다. 이번 사태 장기화로 동북아 대화·협력이 더욱 흔들리면 우리의 외교 안보 경제 전략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중일갈등의 코드를 면밀히 읽고 미중 전략경쟁과 연동된 지역 역학 속에서 신중한 균형외교 전략을 추구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서형원 전 크로아티아 대사/주일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