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연준에 '강 비둘기' 내려온다
미국 통화정책의 방향이 다시 급격히 시장 쪽으로 기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직접 거론한 이후, 그의 연방준비제도(Fed) 수장 기용 가능성은 시장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해싯은 감세와 저금리, 규제완화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표적 완화 성향 인사다. 학자 출신이지만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분명한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트럼프 1기 때 법인세율 21% 인하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의 부상은 단순한 인사 이슈를 넘어 미 금융시장에 다시 한번 완화적 금융정책 사이클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연말을 앞둔 시점에서 연준과 재무부의 움직임까지 겹치며 시장 금융완화에 대한 기대는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연준·재무부의 동시 유동성 완화, 산타 랠리의 조건
연준은 12월 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양적긴축(QT)을 종료했다. QT은 연준이 보유한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각하거나 만기 후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중은행 시스템의 예치금(준비금)을 흡수하는 통화정책이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서 시중에 통화를 공급하는 양적완화(QE)의 반대 개념이다. 2022년 6월 시작한 양적긴축으로 연준의 보유 자산은 8조9655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이제 6조5524억달러로 축소된 상태에서 시중 유동성 흡수를 중단한다. 중앙은행의 자산 축소를 멈추고 사실상 시장의 유동성 흡수 국면을 마무리한 것이다.
연준은 또 최근 단기 자금시장의 경색이 확대되자 12월 3일 오버나이트 레포를 통해 135억달러의 대규모 자금을 신속히 투입하며 시장 안정에 나섰다. 이번 레포 거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두 번째로 큰 레포 운영이다. 금융시스템 유동성의 방향이 완화로 전환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여기에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지해온 ‘글로벌 시스템 중요은행’(G-SIB)에 적용되는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규제완화를 예고했다. 금융시스템 상 주요 대형은행들의 국채 매입 여력을 키워 국채 시장의 구조적 수급 불안을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미 재무부 역시 적극적이다. 11월 20일 785억달러로 최근 5년 이래 최대 규모의 국채 바이백을 단행하며 장기금리 안정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급증한 국채 공급 부담으로 장기 금리가 불안해지자 재무부가 직접 수요자가 된 셈이다.
QT 종료, 국채 바이백, 대규모 오버나이트 레포, 은행 규제완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유동성 완화 전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해싯의 연준 의장 기용 가능성은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다. 해싯이 의장이 될 경우 내년 연준 기준금리 인하는 3~4회에 이를 것으로 시장은 예상한다. 성장주 기술주 가상자산 등 위험자산으로의 자금 이동이 다시 살아나며 연말 산타 랠리 가능성도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다.
완화적 금융정책의 유혹 vs 연준 독립성의 균열
그러나 시장이 반기는 이 완화기조는 동시에 구조적 불안 요인도 키운다. 해싯은 트럼프 경제정책의 설계자 중 한명으로 연준의 정치적 중립성과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다. 그의 연준 의장 취임은 곧 통화정책이 정치 일정과 더 밀착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미 연준 내부는 균열 조짐이 뚜렷하다. 금리인하 시점을 둘러싼 이사 간 의견 차, QT 종료 속도를 둘러싼 견해 충돌, 은행 규제완화를 둘러싼 내부 반발까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채권시장도 부정적인 기류다. 이런 상황에서 친정권 성향의 의장이 등장할 경우 연준의 정책 신호는 데이터보다 정치 환경에 더 민감해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금리하락 달러약세 주가상승이라는 전형적인 완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재점화, 채권시장 변동성 확대, 통화정책 신뢰도 훼손이라는 대가가 뒤따를 수 있다. 특히 재무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 기조와 연준의 완화적 정책이 동시에 유지될 경우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보조 수단처럼 비쳐질 위험도 커진다. 해싯 체제의 연준은 시장에 더 강한 완화적 금융정책 신호를 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분명 단기 랠리를 부르는 재료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연준의 독립성 약화, 정책 신뢰 훼손이라는 구조적 리스크가 동시에 자라나고 있다. 일본중앙은행(BOJ)이 19일 정책금리를 인상할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연말 산타랠리는 올 수도 있다. 다만 그 랠리가 정책 신뢰 훼손이라는 불안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상승의 지속성에는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