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G2 경제 핵전쟁’으로 가나

2025-04-11 13:00:03 게재

‘지구 종말 시계' 자정 89초 전,‘투키디데스 함정’ 빠져드는 미·중 … 군사충돌로 이어질 가능성

올해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바늘은 자정 89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해보다 1초 더 종말 쪽으로 움직였다. 1947년 핵과학자회(BAS)가 처음 ‘지구 종말 시계’ 시간(자정 7분 전)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종말에 가장 가까운 수치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BAS가 가장 무서워하는 지구 종말 시나리오는 핵전쟁이다. 만일 어느 두 핵보유국끼리 핵전쟁을 벌인다면 두 나라는 잿더미로 변한다. 핵공격은 이른바 상호확증파괴(MAD)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다. 상호확증파괴의 공포심 때문에 핵전쟁이 쉽사리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군사 핵전쟁은 벌어지지 않지만 경제 핵전쟁은 벌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상적인 관세정책으로 미국과 중국 간 경제 핵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이 정면 충돌하면서 세계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당사국인 두 나라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증시에 여러날 동안 공포의 파란불이 켜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해방의 날”을 선언하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기본관세 10%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5일부터는 80여개 국가를 상대로 최소 11%에서 최고 50%의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9일에는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기본관세 10%를 초과하는 상호관세의 부과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망나니 칼춤처럼 정신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세계 증시는 널뛰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대 중국 관세는 145%로 뛰었다. 중국은 지난주 34%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7개 희소광물을 수출통제 품목으로 지정하는 등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의 보복조치는 실수”라며 “미국은 더 세게 맞받아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고집대로 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가 억만장자들도 트럼프 비판

이 정도면 가히 ‘경제 핵전쟁’이다. ABC방송은 8일(현지시간) ‘경제 핵전쟁: 트럼프 관세 비판하는 억만장자들’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얼마 전까지 트럼프를 지지해 온 월가의 억만장자들조차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과 경기침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미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억만장자 금융가 빌 애크먼은 7일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경제 핵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애크먼은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의 관세를 “중대한 정책적 오류”라고 강력히 비난하면서 “기업 투자는 중단되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전 세계에서 우리의 평판은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애크먼은 “이를 회복하는 데 수년, 어쩌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정책을 90일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유럽 간의 무관세를 제안하는 등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머스크는 트럼프정부의 ‘관세 책사’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과 충돌했다.

나바로 고문은 7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머스크의 텍사스 공장에 가보면 전기차의 경우 엔진에 해당하는 배터리의 상당 부분이 일본과 중국에서 오고 전자부품은 대만에서 온다”며 자동차의 부품들이 모두 미국에서 제조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을 통해 “어떤 정의를 적용하더라도 테슬라는 미국 내에서 가장 수직적으로 통합된 자동차 제조업체이며 미국산 부품 비율이 가장 높다”며 “나바로는 진짜 멍청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우선’인가 ‘미국 고립’인가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인 제이미 다이먼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괜찮지만 ‘미국 고립(America Alone)’은 안된다”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다이먼은 7일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트럼프의 관세가 물가를 상승시키고 미국을 경기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이먼은 올해 1월만 해도 당시 대통령 당선자였던 트럼프의 관세 정책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었다.

미・중 간 경제 핵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러다가 군사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경제전쟁이 군사전쟁으로 확전된 경우는 허다하다.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만 하더라도 열강간 경제적 이권다툼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세계적인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중간 전쟁은 가능성이 낮지만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앨리슨 교수는 6일 하버드대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양국 정부가 ‘협력’이 아닌 ‘경쟁’을 택한다면 ‘투키디데스 함정’으로 빠져들면서 역사상 가장 격렬한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앨리슨 교수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으로 인한 ‘상호 파괴’의 공포로 극한 갈등을 피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두 강대국이 경제 금융 기후 등 주요 분야에서 상호의존적임을 강조하면서 서로 파국을 피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앨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연구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전쟁처럼 신흥세력과 지배세력이 충돌로 치닫는 양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명명했다.

앨리슨 교수는 2018년 출간된 저서 ‘예정된 전쟁’을 통해 일찌감치 미・중 충돌을 점쳤다. 그는 책을 통해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에 그에 따른 구조적 압박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현상은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법칙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앨리슨 교수는 미・중간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트럼프와 시진핑의 등장을 들었다. 그는 만약 미국과 중국 간 대립으로 전쟁까지 발발하는 할리우드 영화를 만든다면 두 주인공으로 트럼프와 시진핑보다 더 적합한 인물을 찾기 힘들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12년 중국은 시진핑을 새 지도자로 지목하여 앞으로 신흥세력으로서 해 나가게 될 역할에 방점을 찍었고, 미국 역시 선거운동 과정에서 중국을 적대시한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지배세력으로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개인적인 성격으로 보자면 트럼프와 시진핑만큼 다른 인물도 없을 터다. 그러나 1인자가 되기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두 인물 사이에 불길한 유사성이 있다. 과연 이 두 대국 사이의 임박한 충돌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될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나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게 마련이다. G2간 경제 핵전쟁이 벌어지고 진짜 군사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한국은 어떤 대처를 하고 있을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8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관세 문제 등을 논의했다. 한 대행은 통화 다음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복관세로 강경 대응하는 나라도 있지만, 한·미 동맹을 안보동맹이자 경제동맹으로 격상시켜 나가는 것이 보다 슬기로운 해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SNS를 통해 “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비용 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 앞서 진행된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와 관련해 “한중일 공동대응은 하지 않을 것이며 맞서지 않고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야장창 한미일 공조만 외쳐온 윤석열 정권의 총리다운 통상외교 전략이다.

그러나 대륙 세력을 대표하는 중국과 해양 세력을 대표하는 미국이 충돌하는 한가운데서 한미일에 편중하는 전략이 과연 대한민국의 안전을 담보하는 길일까? 한국이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따르는 ‘새우’의 신세가 아니라 고래싸움을 중재하는 ‘돌고래’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