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관세전쟁 “결국 피를 보게 될 거야”

2025-04-18 13:00:10 게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본격화한 이후 미국 달러와 국채, 주식 등 3대 자산의 가치가 일제히 급락하는 ‘트리플(triple) 약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 나라의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팔고 그 자금을 외화로 바꿔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발생하는 현상이다.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달러 표시 자산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는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채권시장의 투매 상황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달러 기반의 자산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근간인 미국 국채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미국 선호가 견고하다면 미국 국채 금리상승은 미 국채에 대한 수요를 높여 달러화 강세로 이어져야 하는데 최근 상황은 정반대로 갔다.

미중 관세전쟁 본격화에 미 달러 국채 주식 등 이례적인 ‘트리플약세’ 현상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이 기축통화 번영 법치 경제력 국방력 덕분에 ‘최후의 위험 회피처’로 인식되고 있지만 세계 무역체제를 재편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 시도 때문에 그런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세계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G2 관세전쟁’이 언제 어떻게 협상을 끝내느냐에 달려 있다. 환율 주식 채권 등 금융시장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JP모건의 브루크 카스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피를 보게 될 것(There Will Be Blood)'이라는 섬뜩한 제목의 보고서를 썼다. 그는 “트럼프 관세정책은 1968년 이후 미국 가계와 기업들에 대한 가장 큰 세금 인상”이라면서 “올해 세계경제 침체 위험은 40%에서 60%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 세금 인상의 효과는 (상대국들의) 보복, 미국 기업 심리 하락, 공급망 중단을 통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이 연출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가 주연을 맡은 2007년 작 드라마 영화다. 이 영화는 미국의 석유 붐 시기를 배경으로 탐욕 야망 그리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해 심도 깊게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역사적으로 고관세는 전쟁을 부르거나, 경제공황으로 뒤끝이 좋지 않았다. 관세문제는 1826년 미국 연방정부가 통과시킨 ‘혐오관세(Tariff of Abominations)’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 법안은 유럽산 공산품에 대한 관세율을 대폭 인상해 북부 제조업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남부 농업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됐다. 특히 영국이 보복조치로 미국산 면화 수입을 줄이면서 남부 농업경제는 파탄이 나게 된다. 이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1832년 연방정부 관세법을 거부하며 ‘무효화 조항’을 선언했고 이후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의 논리적 기반이 되었다.

미국 내 첫 관세전쟁은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당선과 함께 시작된다. 링컨은 보호무역주의를 강력히 주장하는 공화당 출신으로 그가 집권한 1861년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모릴 관세법(Morrill Tariff Act)이 통과됐다. 결국 사우스캐롤라이나를 필두로 남부 주들이 연방을 탈퇴하면서 남북전쟁이 벌어졌다. 미국 남북전쟁은 공식적인 명분은 노예제 문제였지만 내용상으로는 피를 부른 관세전쟁이었다.

트럼프 이전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역정책으로 꼽힌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1930년 6월 상원에서 44대 42로 불과 2표차로 통과됐는데 1929년 10월 월가대폭락으로 진행중인 경제공황이라는 최악의 타이밍에 발효돼 그야말로 재앙이 됐던 법안이다.

미 정부, 연준, 시장이 엇박자 낼 때 금융시장 큰 폭 변동성 주의해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경제클럽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의장에게 사임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미국 금융가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도 1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무역전쟁으로 미국의 국가 신뢰도가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정부와 연준, 그리고 시장이 엇박자를 낼 때 금융시장은 큰 폭의 변동성을 나타내곤 했다. 곧 미국과 관세협상을 해야 하는 우리 정부관계자도 800만 서학개미를 비롯한 투자자들도 시장의 변동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안찬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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