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제2의 김대중’ 되기 경쟁

2025-04-22 13:00:22 게재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예비후보는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인공지능(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고 ‘AI 세계 3대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대통령선거 공약을 제시했다. AI 핵심자산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최소 5만개 이상 확보하고 AI전용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과 실증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날 김경수 예비후보도 "AI 주권 확보와 산업의 전환에 향후 5년간 총 100조원 규모 민관 공동투자를 이뤄낼 것"이라며 "민관 공동투자로 한국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산업별로 특화된 AI 혁신 프로젝트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 예비후보들도 인공지능 공약을 쏟아냈다. 한동훈 후보는 15일 AI 산업에 총 200조원을 투자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공약했다. 홍준표 후보 역시 "AI, 양자, 초전도체, 반도체, 첨단 바이오 등 초격차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최소 5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문수 후보는 AI기반 맞춤형 학습시스템 도입 등 ‘AI 시대 G3 국가 진입’ 공약을 내걸었다.

여야 대선 예비 후보들 앞다퉈 인공지능(AI) 육성 공약 쏘아올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에 따라 오는 6월 3일 선거를 앞두고 여당과 야당의 예비후보들이 이렇듯 앞다퉈 인공지능 육성공약을 쏘아올렸다. 이에 따라 누가 당선되든 인공지능이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요 투자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말하자면 이번 대통령선거는 ‘AI대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과거 김대중정부(DJ정부) 시절 인터넷을 대대적 보급했던 정책과 비슷하다. DJ정부의 그런 정책 덕분에 한국은 IT강국 위상을 굳건히 차지할 수 있었다. 이는 DJ정부의 문화개방과 함께 오늘날 한국경제를 만든 초석이 됐다. DJ정부의 인터넷 보급정책은 강력한 하드웨어산업의 뒷받침도 받았다. 반도체 컴퓨터 휴대전화 TV와 통신케이블 등 양질의 디지털 관련기기가 국내기업들에 의해 생산공급됐던 것이다. 하드웨어 산업의 그러한 발전이 있기에, 이제는 인공지능 육성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인공지능도 한국정부가 앞으로 하기에 따라서는 DJ정부의 성공스토리를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제2의 김대중’이 되겠다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예비후보들이 100조원 또는 200조원 투자를 공약한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것이다. DJ정부의 경우 벤처기업 정책을 통해 탄생된 신생기업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네이버 다음 한글과컴퓨터 카카오 등이 IT강국 도약의 첨병이 되었다. 전자상거래나 게임 등의 업체들이 IT강국의 내용을 풍성하게 채워나갔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유능한 신생기업 벤처기업들이 등장해야 육성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젊은 기업들의 창의적 기업가정신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대기업에 의한 우수한 하드웨어도 물론 필요하다. 최근 수요가 늘어나는 HBM메모리 반도체처럼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양질의 기기와 부품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최근 반도체에 파격적인 지원정책을 펴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들 하드웨어분야에서 치열해지는 경쟁을 이겨내기 위한 각별한 각오가 없으면 안된다. 거세지는 국제경쟁의 물결 속을 헤쳐나가려면 기업체질 개선도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 것이다.

DJ정부가 대기업의 빅딜이나 부실기업 정리 및 부채비율 200%정책 등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체질개선 노력이 있었기에 대기업들도 양호해진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본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격렬해지는 국제경쟁, 정부와 기업 전열 다시 가다듬자

그런데 최근 대기업들은 과거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문어발확장이나 경영권 편법승계에 골몰하느라 유용한 자원을 허비해왔다. 그 결과 국제경쟁이 격렬해지는 시대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믿었던 반도체에서도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HBM메모리나 파운드리에서 경쟁력에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최근 미국의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에 대한 HBM 공급권을 따냈다. 그러나 삼성은 아직 품질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탓인지 소식이 없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인공지능 육성을 너도나도 화두로 내세우는 것은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해 상서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말처럼 앞으로 정부와 기업이 전열을 다시 가다듬지 않으면 안되겠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