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달린 컴퓨터’ 시대, 길 잃은 일본차
이코노미스트 “점유율 31%→26% 하락, 도요타 빼고 다 위험” … 현대차와 대조
일본 자동차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전기차 전환 지연과 중국업체들의 부상이 맞물리며 글로벌시장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대응 실패가 주원인, 닛산 내연차 비중 80% =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일본의 강력한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9년 글로벌시장에서 31%를 차지했던 일본 자동차업체들 점유율은 지난해 26%로 떨어졌다. 특히 아시아시장에서 하락세가 가파르다. 중국내 일본차 판매는 2019년 대비 3분의 1 감소했고, 동남아시장 점유율도 68%에서 57%로 급락했다.
혼다 최고경영자(CEO) 미베 도시히로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1957년 이후 첫 연간 순손실 가능성을 언급하며 급여 30% 삭감까지 발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자동차업체 위기의 본질은 전동화 대응 실패”라고 진단했다.
일본 자동차시장에서는 여전히 내연기관 차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특히 닛산은 80%에 달한다. 나아가 일본업체들은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을 고수해 왔다. 기존 내연기관 생산라인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시장에서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비중은 2019년 3%였으나 2025년 26%로 확대됐다. 아시아에서는 판매차량의 약 3분의 1이 전기차이며, 싱가포르에서는 신규 등록차량의 45%가 전기차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중국 전기차업체들이 있다. 중국기업들은 가격경쟁력과 기술향상을 앞세워 기존 내연기관 중심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기계공학의 역설…SDV에서 밀린 일본차 = 이코노미스트는 전기차 시대의 또 다른 장벽으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꼽았다.
전기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로 불릴 만큼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아 기계공학에 강점을 가진 일본 기업들에게 불리하다. 전기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 제품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율주행,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 디지털 기술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혼다는 제너럴 모터스와 협력해 전기차를 개발했고, 닛산은 영국 AI 기업 웨이브와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협업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도요타는 유일한 예외로 꼽힌다.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시장 점유율 40%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BYD·화웨이 등과 협력해 전기차 전환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중국시장 점유율도 6%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 하나만으로 산업 전체가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자동차 산업은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며 “생존을 위해서는 기존 틀을 깨는 과감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대차·기아는 선제 투자로 글로벌 3위 안착 = 한편 한국의 현대차·기아는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며 새로운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현대차·기아는 전용 전기차 플랫폼(E-GMP)을 기반으로 아이오닉·EV 시리즈를 확대하며 전기차 중심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5년 총 414만대 판매중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비중이 각각 15.2%(63만대), 8.0%(33만대)에 이른다. 기아는 이보다 더 높아 310만대 중 하이브리드 14.5%(45만대), 전기차 9.7%(30만대)를 기록했다.
또 현대차그룹은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전환을 선언하고 자율주행, 차량 운영체계, 무선 업데이트(OTA)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인도 등 주요 시장에 현지 생산거점을 구축하며 선제적으로 공급망 리스크 분산도 추진해왔다.
자동차전문 미디어 카엑스퍼트(CarExpert)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총 724만대를 판매해 도요타(1121만대), 폭스바겐(868만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혼다(346만대, 9위) 닛산(321만대, 10위)을 멀찌감치 따돌린 규모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