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광역단체장과 대선
조기 대선의 문이 열리면서 한때 전국 광역단체장의 대선 출마 선언이 줄을 이었다. 17명 가운데 12명이나 들썩였다. 광역단체장의 대선 출마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다만 단체장 자리를 대선의 징검다리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산불, 싱크홀 등 재난 때문에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역이나 시급한 지역 현안이 있는 곳은 단체장을 향한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한가롭게 대선 놀음을 하기에 광역단체장은 막중한 자리다.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은 기본이고 지역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거나 인재를 키우는 일도 해야 한다. 단체장이 그런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역의 미래가 달라진다. 민선 8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지역소멸 등 지역의 난제들이 많이 생겼다. 그만큼 단체장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지역 미래 먹거리 준비와 인재 육성 등 단체장 역할 중요한 시기
지역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일은 결국 산업과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그간 지역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걱정하는 사람보다 중앙정부에 줄을 대 지역 예산을 많이 따오는 단체장이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의 미래 먹거리와 관련된 산업은 중앙정부가 결정한다고 생각해서 부단체장 중 한 자리는 힘 있는 중앙부처 국장을 영입했다.
단체장들이 국회와 중앙정부의 문턱이 닳아지도록 다녀 따낸 예산을 업적으로 자랑하는 것은 이를 의식한 것이다. 주민들이 중앙부처 관료 출신이거나 국회의원 출신을 광역단체장으로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 같은 지방자치의 역사는 지역의 자립성을 키우기보다 중앙예속을 강화했다. 단체장들은 중앙정부에 손을 벌려 예산을 더 따오는 일에만 열중했고, 중앙에서 따온 예산은 주로 주민복지사업에 투여됐다. 일부 선심성 사업에 예산을 뿌려 다음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중앙정부만 탓하는 단체장들도 많았다. 그들은 재정과 인사, 입법 권한을 모두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지자체가 뭘 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물론 이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8대 2에 이르고, 지자체의 인사권과 입법권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지방자치를 가로막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방소멸 상황에 관한 모든 책임을 중앙정부에만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앙정부만 쳐다본 결과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2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다. 그간 지역은 무얼 했는지 모범사례조차 없는 실정이다.
단체장들이 주민복지 정책을 우선한다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렵게 따온 예산을 지역의 미래 먹거리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이와 관련된 산업과 기업 유치에 힘쓰는 일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인재를 육성하는 일도 결국 지역의 미래 먹거리와 연관돼 있다. 지역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어젠다를 만들고, 그에 맞는 산업과 기업을 유치해야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들이 돌아올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지역의 미래 먹거리에 대해 고민하고 지역인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해야 한다.
단체장은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눈앞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를 막지 못한 정부와 지자체는 어떤 이유로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재난안전기본법 제4조 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고, 재난과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역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단체장에게 나라 운영 맡길 국민은 없다
단체장이 지역을 넘어 국가비전을 구상하는 기회인 대선 출마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단체장의 자리를 화려한 중앙경력의 ‘마침표’로 생각하거나 대선으로 가는 ‘쉼표’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럴 정도로 단체장의 자리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지역의 미래가 단체장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누군가 산불로 생명과 재산을 잃은 이재민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고, 땅이 꺼지지 않도록 밤을 새워서라도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게 단체장이다. 이런 문제를 도외시하고 현역 단체장이 대선에 도전해서 성공한 사례도 없거니와 지역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단체장에게 나라 운영을 맡길 국민은 없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