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AI시대 청년의 삶에 닥친 위험과 기회

2025-05-08 13:00:22 게재

통계청은 ‘2025년 2월 고용동향’에서 2월 중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이라고 답한 15~29세 청년인구가 50만4000명이라고 보고했다. 2003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 수치다. 1년 전 같은 기간에 44만3000명으로 집계되었으니 13.8% 증가했다. 코로나19 시대마저 훌쩍 넘어선다. 이 연령대의 고용률이 2021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44.3%이며, 실업률은 7.0%,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은 17%대로 올라섰다.

이 데이터는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필자의 직업이 갖는 특성상 청년들과 만나는 시간이 많은 편이라 자기반성까지 하게 돼서 더욱 착잡했다.

비경제활동인구란 구직활동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한다. 또 그냥 ‘쉬었음’은 구직단념자를 포함해 수입이 있는 일에 종사할 능력은 있으나 구직활동도 가사노동도 하지 않으며,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텐데 통계청의 담당 국장은 청년층 취업자 비중이 높은 제조업과 도소매업의 일자리 감소폭이 크며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하고 이에 따라 수시채용이 증가하는 등 청년층에 불리한 고용환경을 들었다. 대규모 신입공채가 사라지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추가적인 사내교육이 필요없이 바로 실무를 맡길 경력직을 뽑는다는 말이다.

기업 입장에서야 경제적이겠지만 청년이 경력을 쌓을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니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그나마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의 60% 정도는 직장경험이 있거나 1년내 취직계획이 있는 경우이고, 노동시장에 참여할 의욕이 아예 없는 경우는 40% 정도에 그친다하니 그래도 우려보다는 희망을 크게 볼 여지가 있다.

17% 기록한 역대급 쳥년층 체감실업률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적 논자는 청년들이 노력하지 않는다거나 아직 인생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거나 하는 천편일률적 견해를 보이기도 하고 대기업만 바라보고 중소기업은 외면하는 태도를 문제삼기도 한다. 반면 사회적 구조를 지적하는 입장은 산업구조조정 지연이나 신성장산업의 부재를 문제삼기도 한다.

우선 든 생각은 일반인보다 많은 어쩌면 엄청나다 할 수도 있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하는 의문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는 통상적 의미의 여가가 아닐 수 있지만 대학 표준 경제학 교과서가 여가를 소득을 얻는 노동과 대립하는 것으로 정의하니 우선 그에 따라 ‘여가’라 부르자.

경제학자 J.M.케인즈는 미래세대에 닥칠 시대과제에 대한 질문을 주제로 “손자세대의 가장 큰 과제는 여가를 어떻게 보낼지에 있을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돈을 위한 집착이나 탐욕은 약화되어 더 이상 삶을 사는 동기가 되지 않고, 개인이 자기개발의 주체가 되어 삶의 목적을 고민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했었다. 케인즈는 매우 낙관적으로 미래를 그려본 것인데 맞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디지털 혁신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기술변화는 인간의 여가에 상반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실제로 여가시간을 늘려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가시간의 질이다. 청년층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된 것이지만 많은 시간을 숏폼(short-form, 길이가 짧은 디지털콘텐츠)을 소비하는데 사용한다. 알고리즘과 함께 사는 시간이며 여가의 위험요인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거나 보여주는 영상만을 보고,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맛집만을 찾으며,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옷과 신발을 찾아 신는다.

플랫폼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사람을 플랫폼에 묶어 두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최근 청년층의 집중 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심리학 논문도 나왔다. 결국에는 삶의 목적으로 찾는 데 실패할 위험이 크다.

또 한편 현재의 기술변화는 거꾸로 여가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2잡러’, ‘3잡러’ ‘n잡러’같은 신조어가 쏟아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근로기준법상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와 같은 소득이 낮은 일자리는 여가의 양 자체를 줄인다. 이 두가지 경향이 겹치면 여가의 질과 양이 모두 악화될 뿐이다. 그 결과 많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한다.

청년층 각각에 맞춤형 정책 개발 아쉬워

긍정적 해석의 여지는 있다. 이직과 자발적 퇴사의 이유를 묻는 설문에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답이 ‘성장’이나 ‘자기계발’의 기회다. 단순히 임금을 이유로 하는 이직이나 퇴사와는 다르다. 쉬쉬하는 이직이 아니라 알리고 드러내는 이직과 퇴사가 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쉬었음’이라도 좌절하는 청년과 자기성장의 기회를 찾는 청년에 대한 정책은 같을 수 없다. 정책당국이 고용률과 경제활동참가율 같은 평균적 수치에 매몰되어 서로 다른 이유로 쉬는 청년층 각각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는데 소홀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기우일까.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