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절 물류센터 붐…지금은 너도나도 손절, PF채무만

2025-05-09 13:00:05 게재

공실률 높아지자 수도권 곳곳 공사중단 … 몰락하는 물류센터 PF개발사업

경기 김포시 양촌읍 대포산업단지에 들어서자 공사가 중단된 저온물류창고가 모습을 보였다. 공사장은 펜스로 깨끗하게 관리돼 있었지만 흉물스럽게 드러난 골조는 공사가 중단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8일 만난 대포산업단지 한 기계설비회사 직원은 “공사가 잘 진행되다 2년전 시공사가 부도났는지 공사가 중단됐고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있다”며 “소송 등으로 해결이 잘 안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물류창고는 2021년 시공사를 정해 공사에 들어간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개발사업장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물류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도권에 물류시설이 부족해지자 김포와 부천 이천 안성 등지에 저온시설 등 특수 물류창고 수요가 늘어났다. 물류창고 PF 개발사업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로부터 일상회복 후 불경기가 닥치면서 수도권 물류센터도 인기가 시들었다. 그 사이 공사비가 급등해 자금난도 겹쳤다. 대포산업단지에도 여러 물류센터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짓다 만 물류센터가 곳곳에서 눈에 띄는 이유다.

김포 대포산업단지에 골조만 남아있는 물류창고는 시공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PF 개발사업에 자금을 댄 대출금융기관(대주단)은 대출금을 회수하고 철수했다. 공사가 중단된 김포 대포산업단지 물류창고는 국내 물류센터 PF 개발사업의 실태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김포 양촌읍 대포산업단지 내 공사가 중단돼 2년째 방치된 저온물류창고.

◆시공사 법정관리 들어가자 PF 자금 회수 = 시행사인 A사는 대포산업단지에 물류시설 부지를 사들인 뒤 2021년 4월 시공사로 대우조선해양건설을 선정해 공사에 들어갔다. 당시 또 다른 회사 B사는 대우조선해양건설과 물류창고 시공을 위한 공동수급인으로 계약했다. B사는 전기공사업을 하는 단종회사로 종합건설면허가 없어 단독 시공사로 등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행사와 시공사인 공동수급인은 계약금액 493억원과 공사기간 20개월로 하는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사업시행을 위해 시행사가 설립한 법인은 교보생명 신한캐피탈 롯데카드 부국증권 등으로부터 550억원을 한도로 하는 대출 약정을 맺었다. 대출약정에는 시공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 등이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했다. 그러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이 부채 증가와 부실 경영 등으로 2023년 2월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통상 이런 경우 개발사업을 수탁받은 신탁사는 제3의 시공사를 영입해야 하지만 공사비 급등과 물류센터 매매나 임대 수요가 급감하면서 시공사 선정에 실패했다. 사업 신탁사인 KB부동산신탁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당시 건설사의 재무 상태가 악화됐고 이런 과정에서 다른 시공사를 물색했지만 물류파업과 공사비 급등으로 선뜻 나서는 종합건설사가 없었다”고 밝혔다.

◆대출자금 변제하면 사업권 독식하는 구조 = 대출약정을 하며 맺은 준공기한을 넘기게 되자 대주단은 기한이익상실(EOD)를 선언했다. EOD는 채권자가 대출금을 만기일 전에 회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 준공 책임이 있는 공동시공사 B사가 대출금을 갚고 시행사 지위를 확보하려 시도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시공사가 대출금을 갚았으니 시행사업권을 모두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이같은 사례는 최근 PF부실 사태에 시공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여러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출자금만 상환하면 사실상 사업권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구조로 PF사업이 진행된 탓이다.

B사는 시행사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법원에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박범석 부장판사)는 “공사도급계약에 따라 부담하는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한 시공사가 대위변제를 통해 대주단으로부터 이전받은 담보권을 실행해 사업 시행사의 주식 전부를 취득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이를 이용해 시행사에 대한 경영권을 취득하려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가처분을 기각했다. 이 결정은 2024년 서울고등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사업 시행사 대표는 “신탁계약서 제1조제1항의 신탁의목적에 따라서 처분 또는 운용을 하려면 준공이 우선 돼야 하고 그래야 제 가치를 평가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즉 분양이 잘 된 사업장에서 돈많은 시공사가 PF대출을 일방적으로 상환한 후 시행사 주식과 사업권을 차지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기관·신탁사 모두 발 빼기 = 시행사는 PF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KB부동산신탁과 책임준공관리형토지신탁계약을 맺었다. 계약에 따라 KB부동산신탁은 사업부지 소유권을 이전받아 개발사업을 진행한 뒤 신탁건물을 처분 또는 운용해 수익자에게 신탁이익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물류센터 프로젝트는 시공사 법정관리 후 2년여간 사실상 개발사업을 추진하지 못했지만 신탁사의 책임은 극히 제한됐다. 신탁계약상 특약사항에 따라 이 사업 시행사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고 이 사건 사업 관련 업무를 실질적으로 진행하며 신탁회사는 사업시행자의 명의만을 보유한 채 책임을 지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KB부동산신탁측은 “이 물류창고 사업의 신탁계약은 유효하고 이는 실패한 PF개발사업이 아니라 중단된 사업”이라며 “양측 소송전이 끝나면 다시 PF를 추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물류센터 공실률 높아져, PF 사업장 대거 경공매로 = 김포 물류센터 사업처럼 PF가 마무리되지 않은 사업장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늘어나는 물류를 처리하기 위해 수도권 곳곳에 물류센터 신축이 급증하다 일상회복 후 분양과 임대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물류센터 공급과잉은 PF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시 북항 배후단지 내 물류센터 2곳이 매물로 나왔는데 준공 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PF 부실이 발생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이 대출을 내준 부동산 PF 사업장 중 물류센터 상당수가 임차인 유치에 실패해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 임차인을 찾지 못한 1조원(감정평가액) 규모 물건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25개 사업장에 대한 경·공매도 진행 중이다. 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이 전체 물량의 72%를 차지한다.

특히 신선식품 배송(콜드체인)이 늘어나면서 저온 물류센터 공급과잉이 발생했다. 한국기업평가 분석을 보면 수도권 내 저온 물류센터 공실률이 41.2%(2023년말)에 달했다. 코로나19 이후 저온물류센터 공급이 늘어난 탓이다.

결국 물류센터 PF개발사업이 악화되면서 시행사 시공사 신탁사 대주단 모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됐다. PF개발사업이 ‘프로젝트는 없고 파이낸싱만 남은 사업’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PF대출을 주선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물류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개발사업자들이 너도나도 수도권 신축에 나섰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물류 프로젝트를 들고 금융권으로 찾아왔다”며 “사업 시행자가 미분양이나 임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떤 금융기관이 공동 책임을 질 수 있나”고 반문했다.

물류센터를 공급해온 한 시행사 대표는 “물류센터 PF가 사업 성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각 주체별로 자금 회수만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되고 있다”며 “사업성이 악화하니 과연 사업 성공에 관심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금융기관은 자금 회수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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