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펼치는 ‘제로섬 게임’의 오류
워런 버핏 “무역이 무기가 되어서는 안돼” … 유발 하라리 “모든 거래는 승패뿐인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은퇴 석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3일(현지시간) 버크셔해서웨이 제60회 연례 주주총회 자리에서 나온 버핏의 발언은 분명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미국 CNBC방송은 3일 ‘워런 버핏, 관세와 보호주의에 한방 날리다’는 기사를 실었다. 버핏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큰 실수라며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무역이 무기가 되면 안 된다. 나는 세계가 더 번영할수록 그것이 우리(미국)를 희생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더 번영한다.”
트럼프 관세에 대한 우려 깊어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에 최고 145% 관세 폭탄을 안기고, 합법적인 이민자들까지 몰아내려 하고 있다. 그린란드를 강제 합병한다거나,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고 싶다는 등 기상천외한 도발마저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트럼프는 어떤 세상을 원할까? 트럼프의 머릿속에는 어떤 비전이 들어 있을까?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라이벌 요새화 한 트럼프의 세상’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하라리는 “트럼프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각 국가들이 높은 재정적 군사적 문화적 물리적 장벽으로 분리된 요새들의 모자이크”라고 분석했다. 그는 요새화된 세계는 궁극적으로는 세계 전쟁과 생태계 붕괴, 통제 불능의 인공지능(AI) 시대를 불러올 것으로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프의 비전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거래는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간주된다. 트럼프의 세계에서 국제 협정이나 조직, 법률 등은 일부 국가를 약화시키고 다른 국가를 강화하려는 음모에 불과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윈-윈(win-win) 네트워크’를 추구해 왔다. 유엔(UN)과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를 설립해 국제 갈등을 중재하고 공동 번영을 모색했다.
트럼프는 오랜 세월 다듬어온 지구촌의 질서와 규범을 공격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과 국제제도를 인정하지 않고대내적으로는 자국 사법부의 판결마저 무시하고 있다. 가치와 제도, 규범을 무너트린다면 어떻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트럼프식 세계관에 따르면 정의와 도덕과 국제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힘뿐이다. 트럼프 관점에서 평화는 항복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약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항복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항복을 거부함으로써 벌어지는 전쟁은 우크라이나 책임으로 돌려진다. 약소국 덴마크 역시 강대국 미국에 그린란드를 양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무력으로 그린란드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유혈 사태는 전적으로 덴마크의 책임이라는 게 트럼프식 논리다.
트럼프에게 정의 도덕 국제법 의미 없어
역사를 돌아보면 트럼프의 약육강식 세계관의 오류와 모순을 입증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베트남전쟁(1960~1975년)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당시 미국의 국력은 북베트남에 비교할 수 없는 초강대국이었다. 미국은 한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의 전투병력까지 지원받았다. 하지만 북베트남은 미국에 굴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년)은 며칠 만에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방국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정권을 지원하고 나서면서 전쟁은 무려 9년 이상 이어졌다. 결국 소련은 견디지 못하고 철군했다. 이 전쟁은 소련의 붕괴에도 영향을 주었다.
목하 미・중간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온 중국의 산업 경쟁력을 아예 꺾어놓기로 작심한 듯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미국은 대 중국 관세율을 최고 145%로 끌어올리면서 굴복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대미 관세율을 125%까지 끌어올리고, 희토류 등 희귀금속의 수출을 제한하는 등의 보복조치로 맞서고 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베트남전쟁이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어느 일방의 힘이 절대적으로 앞서는 경우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세계주요 2개국(G2)이다. ‘G2 무역전쟁’은 미국의 수성전(守城戰)과 중국의 공성전(攻城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후 자유시장경제를 주도해온 미국은 나라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면서 보호무역으로 돌아서고 있다. 트럼프는 이제 각국의 지도자와 기업들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여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의 압박은 관세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사회관계망(SNS) 트루스소셜에 ‘8가지 비관세 부정행위’의 사례를 올렸다. 트럼프는 △환율조작 △부가가치세 △원가 이하 덤핑 △수출 보조금 및 기타 정부 보조금 △자국산업 보호용 농업 기준 △보호적 기술 기준 △위조 도용 등 지식재산권(IP) 문제 △관세회피 환적 등을 열거했다. 물 샐 틈 없이 꼼꼼한 장벽으로 미국시장을 둘러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수성전'과 중국의 '공성전' 대결
한때 ‘죽의 장막’을 둘러친 채 사회주의 경제를 고수했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함께 자유무역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세계최대 자유무역지대인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과 신흥경제국연합체인 브릭스(BRICs),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OBOR) 등을 앞세워 나라간 벽을 허물고 있다. 최근 시 주석의 행보는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는 정복자를 닮았다. 시 주석은 지난 14~18일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을 순방했다. 시 주석은 세 나라의 지도자들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일방주의가 아닌 다자주의로 공동의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글로벌 기업가들과의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30여명의 글로벌 기업 리더들과 함께 하는 ‘국제 공상(工商) 업계 대표 회견'이란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엔 쿠리스티아누 아몽 퀄컴 최고경영자(CEO), 올리버 집세 BMW 회장, 아민 나세르 사우디 아람코 CEO,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이사회 의장, 알버트 볼라 화이자 CEO,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 등 기라성 같은 글로벌 CEO들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참석했다.
‘만만디’로 버티는 중국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과 동행하는 것은 기회와 함께하는 것이고 중국을 믿는 것은 내일을 믿는 것이며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어느 쪽으로 승리가 돌아갈까? 아닌 밤중의 홍두깨 격인 트럼프식 보호무역으로는 시 주석의 자유무역 공세를 누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는 이미 자유무역과 국제분업, 글로벌 공급망으로 얽히고설킨 질서를 유지해 왔다.
당장 아이폰과 전기차, 아마존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소비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다. 아이폰은 중국에서 90%가 생산되고 조립된다. 전기차 생산에 없어서는 안되는 희토류는 중국에서 60% 생산되고 90% 정제되고 가공된다. 아마존이 직접 판매하는 제품의 약 25%는 중국산이고, 제3자를 통한 간접 판매까지 합치면 절반 가까운 물량이 중국 기반이다. 누구보다도 중국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대미 무역전쟁에서 만만디로 버티고 있는 배경이다.
칭기즈칸이 금나라를 정복했을 때 신하들은 연경(베이징)의 화려함에 취해 그곳에 성을 쌓고 정착하기를 권했다. 칭기즈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리라”며 단호히 거부했다. 이후 칭기즈칸은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한 대제국 건설에 성공했다.
성을 쌓는 트럼프와 성문을 열려는 시진핑 간 싸움은 그리 오래 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만 그걸 모른다.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