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박영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

에너지 전환 핵심 인프라, 서해안 전력 고속도로 구축

2025-05-09 13:00:07 게재

2025년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이 갑작스러운 대정전으로 마비되었다. 불과 5초 만에 약 15GW의 전력이 사라지며, 양국의 전력망이 마비되었다. 지하철, 병원, 통신, 금융 등 핵심 인프라가 멈춰 섰고,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암흑 속에서 혼란을 겪었다. 정전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와 전력망의 불안정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전력 인프라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인프라 확충은 시급한 과제다. 특히,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계획에 반영된 서해안 초고압직류송전망, 일명 ‘서해안 전력 고속도로’는 국가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고 해상풍력 발전을 촉진하는 핵심 인프라이다.

서해안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풍력 자원을 갖춘 해역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서해안 전력 고속도로가 꼭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대에 전력망 보강이 따라와 주지 못하면 국가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전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이제는 ‘될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준비해야만 한다. 우리가 스페인 대규모 정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다행히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완도-동제주 해상 전력 고속도로를 구축하면서 실질적 기술력을 축적해 왔고, 국내 주요 전력 설비 기업들 역시 변환소 설계부터 해저 케이블 시공까지 필요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통과된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 9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산업화 시대에 고속도로가, 정보화 시대에 통신망이 그랬듯, 인공지능(AI) 시대 ‘전력망’이 국가 성장의 핵심 시설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제정되었다. 서해안 전력 고속도로가 AI 시대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국가 기간 전력망으로 조속히 구축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지금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길을 앞두고 있다. 결코 쉬운 여정은 아니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가 말했듯이 ‘국민의 안녕이 최고의 법’(Salus populi suprema lex esto)이라는 모토로 한전과 산업계는 축적된 기술력과 실행력으로 함께 이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그럴 때 서해안 전력 고속도로는 단지 송전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새로운 성장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