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걸식과 탁발, 그리고 지방상생

2026-03-18 13:00:01 게재

안개 자욱한 루앙프라방의 새벽, 주황색 가사의 행렬이 정적을 깨고 나타난다. 맨발이 땅에 닿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탁발의 행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집 앞 낮은 방석에 앉은 할머니는 바구니를 열어 갓 쪄낸 찹쌀을 한줌씩 발우에 담는다. 말도 없고 눈길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승려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할머니는 정중히 손을 모은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여행자에게는 이 장면이 이국적인 풍경일지 모르지만 라오스의 이 도시에선 수백년 이어져 온 일상의 리듬이자 공동체를 지탱해 온 거룩한 의례다. 시민이 음식을 올리고, 승려는 필요한 만큼만 남긴 뒤 사찰 문간에서 다시 노인과 가난한 이웃, 산지에서 내려온 소수민족 아이들에게 나눈다. 수혜자의 명단도 복잡한 증빙서류도 필요 없다.

어제는 받던 사람이 오늘은 바나나 한 송이를 올리기도 한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고정되지 않는다. 음식은 순환하고, 관계는 남으며, 공동체는 이 리듬 속에서 단단히 결속되어 이어져 온다.

문득 우리 도시의 풍경이 떠올랐다. 전주시는 2014년, 급식카드 대신 새벽마다 대문 앞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엄마의 밥상’을 시작했다. 행정의 효율성보다 결식아동의 ‘낙인감’이라는 사각지대에 주목한 돌봄의 혁신이었다.

단순히 끼니를 해결해 준다는 정책 차원을 넘어선 대전환이었다. 도시락 배달 차량에는 흔한 복지 로고 하나 박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배달원은 인기척 없이 문고리에 도시락 가방을 걸고 사라진다. 잠에서 깬 아이가 마주하는 것은 ‘구호물품’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껏 차려놓은 ‘엄마의 밥상’ 같은 온기다.

급식카드와 도시락의 차이 눈여겨봐야

걸식과 탁발은 겉보기에 닮았다. 둘 다 음식을 청하는 행위다. 걸식이 개인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증명해야 하는 ‘서글픈 노출’이라면, 탁발은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숭고한 순환의 의례’다. 급식카드와 도시락도 마찬가지다.

급식카드는 기능적으로 효율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쉽게 사라진다. 반면 전주의 도시락은 루앙프라방의 탁발을 닮았다. 주는 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시민의 성금과 행정의 정성이 아이의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우리 식의 ‘공동체적 순환’이기 때문이다. 도움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될 때 비로소 복지를 넘어 ‘문화’가 된다. 이 리듬이 아이의 방 문고리를 넘어 마을로, 다시 도시로 확장될 때 비로소 지역을 살리는 진짜 힘이 생긴다.

불교의 ‘보시’는 일회성 자선이 아니라 수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주는 행위는 자신을 비우는 훈련이고, 그 공덕은 다시 공동체로 환류된다. 그리스도교의 ‘봉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예물을 내주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결실을 공동체 안으로 다시 올려놓는 것이다. 대상에게 도움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망 안에서 나와 너를 잇는 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복지는 종종 예산의 금액과 대상의 숫자로 계산된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을 받았는가’보다 ‘어떻게 받았는가’를 더 오래 기억한다. 돕는 방식은 받는 이의 존엄을 지켜주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방식이 공동체의 문화가 된다.

늘 도움받던 루앙프라방의 노인이 내일은 자기가 키운 과일 몇 개를 올리듯 도시락을 먹고 자란 아이가 장차 우리 사회의 든든한 일원이 되어 다시 이웃을 돌보는 존재가 되는 것, 그렇게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작은 순환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잉여와 결핍 연결에 지방 살릴 묘수 있어

이 작은 순환이 한 집을 넘어 골목으로 번지면 마을의 돌봄이 되고, 마을의 순환이 손이어지면 도시는 스스로의 결핍을 치유할 힘을 갖는다. 그 도시들이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 때 지방끼리의 상생 또한 시작될 것이다. 강원도의 식재료가 전주의 도시락에 담기고, 전주의 돌봄 노하우가 전국의 사각지대로 스며드는 ‘지방 간의 탁발’을 상상해본다. 빈집이 늘어 고민인 지역이 공간을 보시하고 청년들이 그곳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잉여와 결핍을 연결하는 이 작은 순환이 쌓일 때 이웃한 지방은 경쟁의 상대가 아닌 연대의 벗이 될 것이다.

탁발이 가르쳐주는 것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다. 그것은 ‘내 것’의 경계를 허물고 다시 공동체의 품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개인의 순환이 마을을 살리고, 마을의 순환이 도시를 살리며, 도시의 순환이 지방을 살린다. 대한민국 지방시대를 활짝 여는 일도 경쟁을 통한 시혜적 예산 배분을 넘어 이렇게 작지만 단단한 ‘존엄의 관계망’을 설계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정 석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공학